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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산 2%는 시대적 요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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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재왈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한국사회에서 1999년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던 전환기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실업자가 속출했다. 반면에 ‘새천년’을 목전에 두고 창조의 불씨가 피어나는 가능성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벼랑 끝 위기에 문화예술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간파한 당시 김대중 정부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사회 각 분야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초긴축 시대에 오히려 문화부 살림살이의 총합인 문화 재정을 국가 전체 예산의 1%로 끌어올린 것이다. 1990년 ‘문화부’라는 이름의 독립부서로 출범한 이래 처음 있는 경사였다. 당시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김 대통령의 애정이 내부 동력이었다면, 소위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를 앞두고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을 국가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서구 문화 선진국의 기획은 보다 본질적인 외적 동인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문화예술계는 혹한기를 잘 넘기고 창조산업의 역군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최근 K팝이 한류의 전령사로 한국 문화의 불모지인 유럽을 강타하고, 성악과 바이올린 등 클래식 영재들이 콧대 높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석권하며, ‘발레의 김연아’로 불리는 박세은이 명문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하는 등 잇따라 낭보를 전하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1999년 문화 예산 1% 체제’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데 이런 창조산업의 가시적인 성과가 분명함에도 99년 이후 정작 정부의 문화 예산은 10년 이상 1% 내외에서 정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올해 정부 재정 대비 문화 재정은 지난해(1.08%)보다 조금 늘어난 1.12%(3조4500억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0개국의 문화 재정 평균 2.2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매출액과 고용 측면에서 문화 재정의 수혜 대상인 문화와 관광, 스포츠 산업이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기여도가 8.7∼10.4%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문화 재정 확보의 시급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화부는 올해 기준으로 문화 예산의 적정 규모를 정부 예산 대비 2.5%로 추산했다. 정병국 문화부 장관은 이를 현 정부 내에 2%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영화와 방송·음반·게임·애니메이션·패션·디자인 등 융복합형 콘텐트 산업 분야가 확장되고 있고, 노령화 사회와 다문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에 따른 문화복지,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재정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K팝의 스타들을 비롯한 창조산업의 역군들이 펼치는 상상력이 조기에 고갈되지 않고, 세계 무대에 한류가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문화 재정의 확대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문화 재정에는 스포츠 분야의 예산도 당연히 포함되는 구조로,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 또한 재정 확대의 동력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화 예산 2%는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기반이 되는 국가의 어젠다가 돼야 할 때다.

정재왈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