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운대 미역 침공 … SF영화 아닌 실제 상황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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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해운대구청.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 해수욕장 모습

 “해운대에 불어닥친 미역 공포다.”

이 달 3일 한 네티즌이 ‘해운대는 지금 미역 지옥’이라는 글과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부산시 해운대 해변 주위가 새까맣게 미역으로 뒤덮힌 것이다. 이 네티즌은 “미역 쓰나미다” “쌓인 미역이 땅을 만들 기세다” “기상이변인가, 마치 SF영화에서 황폐해진 지구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해수욕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등의 설명글을 달았다.

부산시 해운대구청에 문의한 결과 이런 장면을 연출한 물체의 ‘정체’는 미역ㆍ톳ㆍ몰 등이 뒤엉킨 해조류 더미였다. 여기에 패트병ㆍ산업쓰레기까지 섞여 있었다. 다행히 6일 현재 일부는 구청과 관리사무소 측이 치웠고 일부는 다시 바다로 쓸려간 상태다. 구청 한 관계자는 “지난주 내내 해조류가 해안으로 올라왔다. 특히 3일 하루에만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 해수욕장에 50t에 달하는 해조류가 밀려들었다”며 “최근 2~3년 새 부쩍 많은 양의 해조류가 포착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의 원인으로 지난달 말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메아리를 지목했다. 당시 제주ㆍ부산ㆍ목포 등 해상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높은 물결이 일었다. 이 때 연ㆍ심해에 있는 각종 해조류들이 한꺼번에 엉키면서 파도에 밀려 해안을 덮쳤다는 것이다. 국립생물자원관 한 연구원은 “파도가 세고 만조 때면 해조류가 연안으로 떠밀려 올라온다”며 “해조류 성장이 왕성할 6~7월에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 관계자와 시민들은 해조류의 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거주자 정연미(55)씨는 “이런 현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공포스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해운대구청 박상곤 계장은 “이전에 없던 심해 해조류까지 뒤섞여 올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은 “지진 전조 현상이 아닌가”라며 불안해했다.

부경대 최창근(생태학)교수는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해조류를 채취해 역학 관계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해조류의 양이 많아진 것인지, 인근 양식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부산물이 흘러나온 것인지, 해조류가 부착할 암반이 부실해진 것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변화와 태풍 등 기상요인을 고려해야 하지만 지진의 전조 현상의 가능성은 적어보인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1∼2개의 강력한 태풍이 더 올 것으로 내다봤다. 구청측은 “다음 태풍 때 또 대량으로 해조류가 발견되면 이를 채취해 원인을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메아리로 제주도에서 90여 년 만에 희귀조류 큰제비갈매기 30개체 이상이 확인됐다. 원래 분포권보다 1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다. 또 열대 해양성 조류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시속 400㎞)로 알려진 군함조가 강릉시에서 포착됐다. 해운대 해안에 올라온 해조류 중 국내에서 보기 드문 종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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