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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대형마트가 존재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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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병렬
이마트 대표

대형마트의 존재 이유는 좋은 물건을 값싸게 파는 데 있다.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내건 슬로건도 ‘Save money, live better’다. 돈을 절약해서 생활의 질을 높이자는 이 말은 대형마트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잘 웅변하고 있다.

 평소에도 유통업체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현재와 같은 고물가 상황에서는 그 경쟁이 더욱 격화된다. 소비자들이 극도로 가격에 민감해지고 철저하게 가격 비교를 한 다음 합리적인 소비 기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달은 어느 업체에서 어떤 물건을 얼마에 파는지 실시간으로 검색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격 정보를 소비자들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는 상황에서 적당히 눈속임하는 가격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유통업체는 고객들의 불신만을 사게 된다.

 고물가 상황은 유통업체나 소비자에게 괴롭다. 하지만 이러한 고물가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유통구조에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깔려 있는지 차분하게 점검해 보는 계기를 가져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국제 원자재 값이 뛰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그런데 이런 어쩔 수 없는 문제들 외에도 우리 시장에는 상품가격을 왜곡시키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공급과 소비의 균형에 의해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상품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1993년에 처음 만들어졌지만 유통시장 전체의 시스템은 아직도 후진적이다. 유통산업 선진화는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중간 유통 단계를 최소한으로 줄여 주는 것이 핵심이다.

 유통 단계가 짧을수록 공급자는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싸게 구매할 수가 있는데, 아직 ‘다단계 유통’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농수축산물 같은 1차 산업의 유통에서 특히 이런 현상이 심하다. 대형마트에서 유통단계를 줄이기 위해 직거래나 계약재배를 늘리고 있지만 전체 시장규모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또 다른 문제는 대형 제조업체의 가격결정권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데 있다. 브랜드 파워와 절대적인 시장 장악력을 갖고 있는 대형 제조업체들은 대리점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체 유통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통업체도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대형마트 사업은 놀랄 만한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월마트마저 이마트에 두 손을 들고 철수해 버리자 우리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생겼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판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치열함, 그리고 고통과 경쟁이 요구된다. 우리는 과연 이런 노력을 100% 충실하게 진행했는가.

 비록 점포는 몇 개 안 되지만, 미국계 창고형 할인점의 한국 내 매장들이 한국 유통업체들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핵심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유통업체가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고물가 상황은 괴롭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그리고 유통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우리 사회의 유통 구조를 한 단계 더 선진화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자성하고 혁신해야 한다.

최병렬 이마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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