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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중국공산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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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공중앙당사(中共中央黨史) 연구실은 『중국공산당역사(1991)』에서 당 창건일을 1921년 7월 23일로 못 박았다. 그런데 왜 창건 기념식은 7월 1일 치를까? 1941년 6월 30일 중공중앙이 『중국공산당 탄신 20주년, 항전 4주년 기념지시』란 문건에서 7월 1일을 창건 기념일로 규정했기 때문이란다. 그때는 항일전쟁 시기라서 정확한 날짜를 알기 어려웠다지만 제 날짜를 알고 난 이후에도 칠일(七一)을 유지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1921년 7월 23일 상해 법조계(法租界) 이한준(李漢俊) 집에서 북경 대표 장국도(張國燾), 상해 대표 이달(李達), 무한 대표 동필무(董必武), 장사 대표 모택동 등 불과 12명이 모여 결성한 중국공산당이 30여 년도 못 돼서 전 중국을 차지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련의 스탈린도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蔣介石)이 승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공산당의 승리에는 1937년 장학량(張學良)이 장개석을 감금한 서안사변(西安事變)이 결정적 계기였음은 본란(2011년 2월 23일자)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중국사 연구자인 로이드 E 이스트만은 1984년 『파멸의 씨앗』(국내에서는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로 번역)에서 공산당의 승리 원인에 대해 흥미롭게 분석했다. 공산당이 국민당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국민당 스스로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낡은 정치제도를 물려받은 국민당 정권이 대중이 요구하는 정치·경제 개혁을 실행하지 못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장』은 “사람은 스스로 모독한 이후에 남이 모독하고, 나라는 스스로 친 이후에 남이 친다(人必自侮然後人侮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라고 말했다. 『상서(尚書: 서경)』 『주서(周書)』는 ‘무릇 사방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멸망한 것은 스스로 지은 죄의 결과가 아님이 없다(凡四方小大邦喪, 罔非有辭于罰)’라고도 말했다. 이스트만의 분석은 역대 한국 정권에 적용해도 잘 들어맞는다. 노무현 정권이 530만 표 차이로 무너진 것이나 현 정권이 민심의 바닥을 헤매는 것은 모두 자초한 것이다. 야당은 대응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혜자가 되었을 뿐이다. 대응축이 생기는 것 자체가 두려운 중국공산당도 문제지만 대응축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반복하는 한국 정치지형도 문제다. 백성들이 소외된, 그들만의 리그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이런 정치구도를 깨는 계기가 될지 궁금하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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