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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이 46개국 관리 … “서울대공원 아프리카관보다 못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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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03면

2009년 11월 서울서 열린 제2회 한아프리카 포럼에서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아프리카 15개국의 장관급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회의에서 대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를 두 배로 늘린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서울 선언이 발표됐다. [뉴시스]

#1. 외교통상부 아프리카과 직원들 사이에 전해 오는 일화가 있다. 언젠가 서울대공원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동물원을 둘러보던 중 어느 직원이 말했다. “여긴 아프리카 1, 2, 3, 4관까지 있군요. 중국 외교부 수준인데요. 차라리 동물원이 부러워요.” 다른 직원들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한바탕 웃긴 했지만 뒷맛은 영 씁쓸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동물들을 4개의 전시관에 나눠 관리하고 있는 것을 중국 외교부가 아프리카 1과에서 8과까지 운영 중인 것에 비유한 자조적 농담이었다.
한국 외교부는 단 1개과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46개국을 담당하고 있다(이집트·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의 7개국은 중동과 담당). 아프리카과의 직원수는 과장을 포함해 모두 8명. 직원 1명이 6~7개국을 나눠 맡고 있는 셈이다. 아프리카에 각별한 공을 들이는 중국은 예외로 치더라도 일본 외무성도 같은 사하라 이남 지역을 2개과가 나눠 맡고 있다.
 
기니 장관 “중국은 우리 혈맹”
#2. 지난해 6월 미차 온도 빌레 적도기니 외교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과 회담했다. 적도기니는 인구 127만 명의 소국이지만 최근 대규모 유전이 발견돼 여러 나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나라다. 유 장관이 적도기니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협력 방안을 약속하며 말을 꺼냈다. “최근 중국이 아프리카 투자를 확대하고 인프라 건설을 하고 있지만, 본국에서 인력을 데려오고 각종 장비도 중국 것만 사용하는 등 자기들 잇속만 차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현지 고용창출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빌레 장관의 반론이 돌아왔다. “너무 중국을 비판하지 마세요.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을 때 오직 중국만이 도움을 줬습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혈맹과도 같은 나라입니다.”

이 대통령 순방 계기로 본 아프리카 외교 현실

19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폐허 상태이던 이 나라에 중국은 해마다 의사 10명씩을 파견해 주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순간 회담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당국자는 “마음을 사는 외교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저주받은 대륙’으로 치부되던 아프리카가 ‘지구촌의 마지막 성장엔진’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동을 대체할 에너지·자원의 보고로 부상하고 있는 데다, 수십 년간 계속되던 내전이 마무리되고 정치 안정이 이뤄지면서 본격 성장 가도에 접어들었다. 60년 이후 40여 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0.5%에 머물렀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5∼7%대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진출의 발판을 삼기 위한 각국의 외교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갖는 존재감은 미미하다. 앞의 두 사례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낮고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교부의 아프리카 담당 인원이 부족한 것이 단적인 예다. 현지에 개설한 공관 수를 봐도 태부족이다. 한국은 사하라 이남 46개국 가운데 대사관을 둔 나라가 13개국뿐이다. 반면 중국은 42개국, 일본은 25개국에 대사관이 있다.

역대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한 사례는 2일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단 세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국가주석과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의장 등 최고권력자들이 번갈아가며 아프리카 각지를 골고루 순방하는 것을 연례화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아프리카 14개국을 돌았다. 인구 13억 국가의 정상이 인구 8만의 섬나라 세이셸을 찾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중국과의 연간 교역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에 ‘차이나프리카(차이나+아프리카)’란 별칭이 붙게 된 건 오랫동안 그렇게 정성을 쏟아부은 결과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아프리카에서 후발주자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국의 상품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무역대국임에 비춰보면 매우 낮은 수치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더 이상 아프리카를 무관심의 영역으로 방치하면 안 될 만큼 경제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거나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태도는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외교당국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자원 외교’란 구호 아래 아프리카 외교가 강조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단기 목표만을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상대 국가들의 경계심이나 의구심을 샀다. 차곡차곡 쌓인 신뢰나 우호관계 없이 돈만 싸들고 가서 자원을 달라고 한들 선뜻 내줄 리 만무하다. 잇속과 실리만 차리는 관계가 오래 못 가는 건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스마트 외교’를 펼쳐야 진정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원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도 딸려 온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후발주자 한국은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50억 달러 규모의 개발펀드 조성과 부채탕감 등 중국과 같은 물량공세를 펼 수도 없는 처지인 한국이 아프리카에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박수덕 외교부 아프리카 과장은 지구상에서 ‘개발 경험’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박 과장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의 개발경험을 열렬히 배우고 싶어한다”며 “짧은 시간 안에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의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나라가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만의 외교자원”이라고 말했다.

상대 마음 읽는 스마트 외교 필요
지난해 3월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대통령이 한국에 왔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내전은 끝났다. 지금은 빈곤·미개발과의 또 다른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 엄청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믿을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한국이 그러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카빌라 대통령의 말처럼 DR콩고는 2001년 내전을 끝내고 국가재건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54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두 차례 내전의 여파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찾아낸 것이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DR콩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박정희 정권 시절 오원철 경제수석비서관의 저서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를 탐독한 뒤 다른 공무원들에게도 읽게 했다. 부케냐 우간다 부통령은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교해 새마을운동과 한국의 농촌개발 노하우를 배워 갔다.

한국이 아프리카에 개발경험을 전수하고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은 2일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서도 강조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11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DR콩고·에티오피아 등 3개국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의 순방은 원래 지난해로 예정하고 있었으나 천안함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미뤄둔 것이다. 마지막 순방국가인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의 대아프리카 외교 원칙을 담은 연설을 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이뤄낸 한국의 경험을 아프리카 국가들에 전수하고 에너지·자원 분야 등에서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상생과 윈윈(win-win)을 추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평소 “우리는 과거 미군에 초콜릿 달라고 손 내밀면 미군들이 한 손으로 던져줬는데 우리는 원조를 제공하면서도 두 손으로 줘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 밖에 남아공에서는 경제협력방안 논의와 함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막바지 득표전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DR콩고에서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지원과 인프라 건설 등의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또 6·25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에 대한 감사를 표명하고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차관 제공을 약속할 계획이다. 참전 이후 61년 동안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던 에티오피아에 대한 뒤늦은 보은 방문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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