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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1921년 7월 ~ ) 기획 (下) 학습·변신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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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을 축하하는 대형 가무극 ‘우리들의 기치(旗幟)’ 공연이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막을 올렸다. 이 공연에는 200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해 중국공산당의 발전 과정을 그린다. [베이징=연합뉴스]


중국공산당 창당 90년은 변신의 역사 90년이다. 정세 변화에 따라, 시대 흐름에 맞춰 변신을 거듭했다. 생산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국력 증진에 유리하며, 인민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만 있다면 어떤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변신을 위해 끊임없는 학습을 강조한다. 치열한 학습만이 시대의 변화를 장악할 힘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학습의 힘’과 ‘변신의 힘’을 살펴본다.

노동자·농민의 당? … 공산당, 이름만 빼고 다 바꿔

‘하이브리드의 예술’ 변신

공자

중국 헌법 제1조는 ‘중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노동자·농민 연맹에 기초한 인민민주독재 국가’라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얘기다. 헌법이 제정됐던 1954년에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노동자·농민은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 격)에서 철저히 소외된 계층이다. 제11기 전인대 대표 2909명을 직업별로 보면 당·정 관료가 53%를 차지하고 기업인(29%), 군인(9%) 등 순으로 구성됐다. 노동자·농민은 1%도 되지 않는다. 강효백 경희대 교수는 “중국의 통치권력 주체가 노동자·농민 연맹에서 관료·기업 연맹으로 대체됐다”며 “공산당·사회주의는 허울뿐 실제로는 자본주의를 하겠다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 공산당이 의도했던 일이다. 2000년 2월 장쩌민(江澤民·강택민)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광둥성을 시찰하며 ‘3개대표(三個代表)’ 노선을 제시했다.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광범위한(廣大)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핵심은 ‘광범위한 인민’에 있다. 당이 대표해야 할 계급이 기존 노동자·농민에서 기업인·자본가·지식인 등으로 확대됐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려는 공산당의 처절한 자기변신이다.

  공산당은 필요하다면 이념·정체성·조직 등을 모두 바꾼다. ‘고양이가 쥐 잘 잡으면 됐지 색깔이 뭐 중요하냐’는 식이다. ‘공산당이라는 이름만 빼고는 다 바꾸겠다’는 의지다. 환구시보(環球時報)가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 발전의 핵심 요소’로 꼽힌 게 ‘변(變)’이다.

 그 변신은 죽였던 공자도 살려낸다. 공산당은 시장주의 확산으로 당의 이념이 약화되자 정신적·사상적 이데올로기로 유교와 공자를 내세우고 있다. 유교를 통해 중화 민족주의를 고양하고 있다. 공자는 해외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공자학원은 101개국에 700여 곳이 개설돼 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시기 ‘비림비공(批林批孔·린뱌오와 공자 비판)’ 운동을 벌이며 ‘공자 죽이기’에 나섰던 이들이 다시 공자를 되살리고 있다.

 공산당의 변화는 ‘하이브리드의 예술’이다. 물과 불의 관계인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하나로 묶어 낸 나라가 중국이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은 중국을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키운 이념적 토대였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각광받고 있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국가의 간섭’과 ‘자본주의’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조합해 세계 자원을 싹쓸이하고, 기업을 인수합병(M&A)한다.

 기업과 행정의 하이브리드도 눈에 띈다. 2007년 17대 당대회 이후 공산당은 리더십의 혁신을 위해 국영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우수 기업가들을 지방 정치·행정 수장에 잇따라 임명하고 있다. 중국 알루미늄공업 궈성쿤(郭聲琨·곽성곤) CEO는 광시 자치구 당서기에, 자동차업체인 이치(一氣)그룹의 주옌펑(竺延風·축연풍) 회장은 지린(吉林)성 부성장에 각각 임명되기도 했다. 전성흥 서강대 교수는 “변화야말로 공산당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공산당의 자기혁신이 없다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공산혁명 성지에 ‘1교 5원’ … 당 간부 교육 시스템 완성

후진타오의 ‘학습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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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기보다도 더 강력한 학습의 중요성을 잘 꿰뚫고 있는 중국공산당은 당 간부 교육을 위해 ‘1교5원(一校五院)’이라는 독특한 교육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1교5원이란 베이징의 중앙당교(黨校)를 구심점으로 국가행정학원, 중앙사회주의학원, 상하이 중국푸둥(浦東)간부학원, 징강산(井岡山)간부학원, 옌안간부학원을 말한다. 푸둥·징강산·옌안 간부학원은 후진타오 집권 시기인 2005년에 설립됐다. 중국공산당 제1차 당 대회가 열린 상하이 푸둥에, 공산혁명의 첫 근거지인 징강산에, 또 마오쩌둥이 13년간 머물며 국민당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옌안에 각각 학원을 설립한 의도가 흥미롭다.

 중앙당교는 장관과 성장급 간부를 주로 교육하는 반면, 나머지 학원들은 국장급과 청장급 중견간부를 주로 교육한다. 천바오성(陳寶生·진보생) 중앙당교 부교장은 “시장·민주·인터넷은 인류가 발전시킨 세 가지 위대한 창조”라며 현재 “당원들에게 뉴미디어를 중요한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은 그 자신이 앞장서 학습하는 지도자다. 2002년 말 당 총서기가 되자마자 그해 12월부터 정치국 집단(集體)학습을 시작했다. 지난달까지 무려 73차례의 집단학습을 실시했다. 정부 부처의 간부들을 정기적으로 다른 부처 또는 지방이나 기업으로 파견해 일정 기간 현장 경험을 익히게 하는 ‘괘직단련(掛職鍛煉)’도 중국공산당만이 실시하는 독특한 학습법이다.

  중국 언론인 위하이성(于海生·우해생)은 “양무운동·무술변법·신해혁명과 5·4운동에 이어 1921년 중국공산당이 창당하고 이후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중화민족 대부흥을 위한 학습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 간부 단련 ‘학습의 힘’

“실사구시(實事求是)하되 빈말하지 말라(力戒空談)” “이전의 과오를 뒷날의 경계로 삼아라(懲前毖後)”. 실제를 찾고,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학습할 것을 주문한 마오쩌둥 의 말이다. 중국공산당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경험과 실천을 총정리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왔다. 창당 90주년 생일상을 성대하게 차릴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로 공산당의 ‘학습 유전자(DNA)’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장시성 남부 해발 800m 산악 지대에 자리 잡은 징강산 간부학원. 13일 이 학원에서는 중국공산당원 40여 명이 ‘열공’ 중이다. 멀리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온 간부들이다. 저우진탕(周金堂·주금당) 징강산간부학원 부원장은 “소련공산당은 창당 91년, 집권 74년 만에 무너졌다. 당과 군중의 관계를 잘못 처리했기 때문”이라며 “창당 90주년, 집권 62년의 중국공산당이 장수하려면 집권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징강산학원 관계자는 “2005년부터 이제까지 당정 간부 2만7520명을 교육시켰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연수생들이 먹는 밥은 일반 쌀보다 붉고 거칠어서 조금만 먹어도 허기가 지지 않는 홍미(紅米)로 만들었다. “공산당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홍군(紅軍)들의 간고분투(艱苦奮鬪) 정신을 체험토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또 홍군들이 부족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달렸던 100리(50㎞) 길은 이제 후배 공산당원들의 극기훈련 체험 코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 서북부 황토고원 일대 에 위치한 산시(陝西)성 옌안(延安). 대장정의 종착역인 이곳엔 옌안간부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17일 옌안간부학원의 자오롄싼(焦連三·초연삼) 교수는 전국 각지에서 온 99명의 중견 간부를 인근 짜오위안(棗園) 혁명 근거지로 데려가 ‘옌안 시기의 당군(黨群·당과 군중) 관계’라는 주제의 야외수업을 하고 있었다. 자오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장수 비결에 대해 “문혁 등 상당한 오류가 있었지만 착오를 겁내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 잘못을 수정하고 과감하게 고치는 데 용기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오 교수에게 “중국공산당 수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다고 보느냐”는 돌발적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중국공산당 만세(萬歲)”를 외쳤다. 그는 “중국공산당은 한국 것이든 서방 것이든 중국의 국익과 인민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뭐든 배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옌안에서는 미래의 중국공산당을 짊어질 ‘새싹(種子)’을 골라 기르는 교육도 한창이었다. 옌안중학은 전교생 7000명 중 공산주의청년단 단원이 6150명이나 됐다. 이 학교 방명록에 있는 1972년 한 졸업생이 남긴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 ‘과거의 일을 잊지 않고, 그것을 오늘 일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학습형 당 조직 건설의 실천과 사고’라는 대형 특집 보도를 내보냈다. “학습을 통해 부단히 스스로를 향상시키지 않으면 이 시대에 발을 붙일 수도 없다”는 경고성 내용이다. 신문은 또 “학습은 당 간부의 생활방식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 최대의 집권정당을 하나의 거대한 학습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미래가 있는 이유다.

특별취재팀=유상철·한우덕·신경진(이상 중국연구소[연구소 소개 페이지 링크] 기자),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정용환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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