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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대입 척척박사] 입학사정관 전형 베테랑, 서울 인창고 임병욱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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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 입시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입학사정관 전형’이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진학 담당 교사들마저 “대학에서 원하는 잠재력이 도대체 뭐냐”며 한숨을 내쉰다. 한 학교에서 이 전형 합격생을 2~3명만 내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하지만 서울 인창고는 지난해 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22명을 대학에 보냈다. 올해로 교단에 선 지 28년째를 맞는 임병욱(국어) 교사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입학사정관을 직접 만나 정보를 묻다

임병욱 교사는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입학사정관 전형을 노리는 학생들을 불러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해 열강을 한다. [김진원 기자]

“입학사정관 전형은 대학별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다 달라요. 연세대·고려대는 내신성적이 제일 중요하고, 성균관대는 리더십, 경희대는 스펙이 뛰어난 학생에게 유리하죠.”

23일 오전 인창고 교무실에서 만난 임 교사는 분주해 보였다.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펜을 쥔 오른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2012학년도 대학별 전형계획안을 비교하며 대학·전형별로 입학사정관 전형 주요 평가요소를 메모하는 중이었다. 그의 자리 뒤편에는 서류뭉치가 어른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2008년부터 입학사정관 전형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것이다. “매일같이 대교협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형 변경 내용 등을 체크하지만, 신문에는 그런 정보가 좀 더 빨리 나오니까 모아두는 거죠.”

“전형을 분석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임 교사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가 보여준 전화번호 목록에는 서울대부터 제주대까지, 87명의 입학사정관 번호가 입력돼 있었다. 대학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니며 사정관들에게 직접 번호를 물어 하나하나 모아둔 ‘재산’이다. 요즘도 전형계획안을 공부(?)하다 조금이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사정관들에게 전화를 건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1주일에 10명 정도의 사정관들과 전화 통화를 해요.”

체계화된 교내외 활동 프로그램 만들다

3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열릴 때마다 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학교 주변에서 청소하고 봉사시간을 받는 것, 입학사정관들은 절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학교의 역할이죠. 봉사활동 과정에서 학생들도 자신만의 특별한 스펙을 쌓을 수 있어요.”

인창고 학생들의 모든 봉사활동은 임 교사의 머리에서 나왔다. 4년 전, 입학사정관 전형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그는 ‘장애우와 함께하는 작은 학교’라는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놀토’면 100여 명의 학생과 인근 지역에 사는 30명의 중3~고2 장애우를 찾는다. 또래 장애우들에게 밥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봉사경력을 쌓고, 입학사정관 전형 자기소개서에 쓸 자신의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방학이면 1·2학년 학생 250명을 모아 강원도·충청도로 헤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 봉사활동을 떠난다. 올해 북악리더십 전형으로 국민대 건설환경공학과에 합격한 오성률(20)씨는 1학년 때부터 헤비타트 봉사활동에 참가해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면서 건설 분야 진출에 대한 꿈을 명확히 했다.

실전 같은 연습만큼 좋은 건 없다

“입학사정관 전형 1단계를 통과할 수 있도록 내신성적 관리만 하라고 해요. 자기소개서와 면접준비는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6월이면 임 교사의 본격적인 입시준비가 시작된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을 불러 내신성적과 활동내역을 살핀 뒤 지원가능 대학·학과를 정한다. 학생 하나하나의 강점을 찾아내기 위해 얘기하다 보면 한 명당 면담시간이 3시간을 훌쩍 넘는다.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해야 할 내용을 조언하고, 학생들이 써온 자기소개서는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세심하게 지적한다. “보통 5~6번은 다시 써오게 해요. 완성하는 데 2개월쯤 걸리죠. 처음에는 내용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마무리 단계에선 어법이나 표현에서 잘못된 부분을 얘기해 줍니다. 아무래도 국어선생이니까 도움이 되는 면이 있지 않겠어요?”

1단계 서류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은 따로 불러 모의면접을 진행한다. 고3 담임들은 물론, 인문계는 사회 교사, 자연계는 수학·과학 교사와 함께 예상문제를 내고 학생별로 면접을 치른다.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포스텍(POSTECH)과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에 합격한 강석준(20)씨는 “모의면접을 처음 할 때는 긴장감에 말까지 더듬었는데, 10여 차례 면접연습을 한 덕분에 실제 면접에서는 떨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이 내 나이를 알면 ‘나이 든 사람이 아직까지 진학 담당을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는 교단에 서는 마지막 날까지 진학지도를 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나를 원하는 한 더 나은 진학 실적을 내기 위해 입시설명회장을 돌아다닐 겁니다.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인창고로 가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연륜의 힘을 보여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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