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낮은 곳 비추는 ‘천사의 연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민세빈·지윤 자매가 26일 사회복지시설 계산원에서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고향의 봄’을 연주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26일 오후 2시 전남 나주시 삼영동의 계산원에선 ‘고향의 봄’ 연주가 울려 퍼졌다. 민세빈(10·여)·지윤(6·여) 자매의 합동 연주였다. 연주회의 이름은 자매의 이름을 딴 ‘윤빈 콘서트’.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화음이 울려 퍼지자 장애인들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계산원은 중증장애인 50명이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음악이 흐르자 장애인들은 비가 뿌리는 날씨의 흐린 마음을 털어 내기라도 하듯 신나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서툴지만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또 박자에는 맞춰 고개를 흔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세빈 자매가 연주하는 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에 푹 빠진 듯 했다.

 세빈 자매는 한 달에 한,두번 계산원·계산노인요양원을 찾아가 연주를 한다. 중증 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윤빈 콘서트’는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듣는 사람들의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해 연주곡도 골고루 레퍼터리를 준비한다. ‘반달’과 ‘오빠 생각’ 같은 순수한 동요부터 ‘어머나’ ‘무조건’ 등 흥겨운 트로트도 들을 수 있다. 때론 어린 나이답지 않게 ‘미뉴에트(minuet)’나 ‘마법의 성’을 세련된 솜씨로 연주 하기도 한다.

 세빈 자매의 연주는 ‘엄마’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선물이기도 하다. 엄마인 박주연(47)씨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30여 년 전 각막이 변형되는 ‘원추 각막’이 발병하면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1995년 각막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박씨는 “세상 모든 것에 감사 한다. 새 인생을 살도록 기회를 준 각막 기증자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가장 큰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사회에 소중한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2008년 5월 같은 동네에 사는 주부들과 함께 봉사단체 ‘고운맘’을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장애인시설을 찾아가 배식 도우미도 하고, 초등학교 도서관의 봉사활동에도 헌신적으로 나선다. ‘고운맘’에는 남편(민종필·45)도 참여하고 있다. 박씨 가족 모두가 봉사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박씨는 “하루하루 세상을 다시 태어나 두 번 사는 것 같은 감동과 기쁨을 체험하고 있다”며 “두 딸의 연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희망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산요양원의 김미경(45·여) 사무국장은 “윤빈 콘서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심리 치료를 돕는 효과가 크다”며 “이제는 남매의 연주 시간을 기다리는 팬들이 생길 만큼 콘서트 인기도 높다”고 말했다.

 계산원에는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사, 재활전문가 등 30명이 이들 상담과 치료, 교육 등을 돕는다.

글=최경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