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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갱 두목, 동생은 주 상원의장…영화 같은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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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형 제임스(左), 동생 윌리엄(右)

형제의 운명은 엇갈렸다. 폭력조직에 몸담은 형은 갱 두목이 됐다. 정치인이 된 동생은 주(州)의회 의장 자리까지 올랐다. 동생은 형으로 인해 정치적 고난을 겪을 때도 형을 버리지 않았다.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보스턴 의 아일랜드계 ‘윈터 힐 갱’의 두목 제임스 휘티 벌저(82)와 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장인 윌리엄 빌리 벌저(77·민주당) 형제의 실제 이야기다. 제임스는 22일(현지시간) 16년의 도피생활 끝에 미 연방수사국(FBI)에 붙잡혔다. AP통신은 엇갈린 두 형제의 기막힌 운명을 25일 전했다.

윌리엄이 1996년 출간한 회고록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 따르면 형 제임스는 20대이던 56년 은행강도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으며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그 사이 동생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해 70년 주 상원의원이 됐고 8년 후에는 상원 의장직에 올랐다. 형 제임스는 라이벌 갱단의 정보를 FBI에 건네는 이중 첩보 활동을 했다. 그의 이력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디파티드(2006)’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갱 두목 형을 뒀다는 사실이 윌리엄의 경력을 따라다녔지만 동생은 형을 끝까지 감싸안았다. 95년 제임스가 정식 기소를 하루 앞두고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윌리엄은 형으로 인해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그는 “형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재소자가 조기 출소를 보장받고 있다”며 오히려 검찰을 비판했다. 앞서 제임스 사건으로 대배심 증언대에 섰을 당시에도 윌리엄은 형에게 자수를 권유하지 않았다. 현지 신문 보스턴글로브의 보도에 따르면 윌리엄은 당시 “형에게 불리한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 형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도울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윌리엄은 제임스로 인해 매사추세츠대 총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제임스 역시 윌리엄을 의장직에서 끌어내리려는 같은 당 출신 정치인에 대한 선거 방해 운동 등을 통해 동생을 도왔다.

형제는 24일 법정에서 짧은 재회의 순간을 가졌다. 형 제임스는 동생을 향해 짧게 미소를 지으며 “하이(Hi)”라고 입모양으로 인사를 건넸다. 동생 역시 형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윌리엄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흔한 경험은 아니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남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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