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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4호 10면

예년보다 한 달 이른 불볕더위가 강력했습니다. 매실 밭일을 어지간히 끝내긴 했지만 집 주변 잡초들은 밀림 수준인지라 풀베기를 마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해 뜨기 전에 조금 일해도 온몸이 땀범벅이 됩니다. 아직 마른 장마였습니다. 오전에 조금 일하고 오후에 계곡을 찾았습니다. 동네를 벗어나 피아골 계곡까지 갔습니다. 동네는 경상남도이고, 피아골은 전라남도이지만 차 타고 15분이면 갑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피아골 입구에 근사한 솔밭이 있습니다. 솔가지 냄새 가득 마시며 계곡에 갔으나 물이 많이 말라있었습니다. 계곡은 요란 맞아야 제멋인데 너무 조용했습니다. 근래 날씨가 가물긴 가물었나 봅니다. 그나마 조금 더 선선한 그늘을 찾아 바위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바위 곁을 지나는 물을 보고, 듣고, 느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용한 계곡에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마른장마도, 불볕더위도, 조용한 계곡도 다 그럴 때였나 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냥 그때그때를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그것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요란 떨지 않아도 이 더위를 식혀 줄 장맛비가 이렇게 성큼 온 것처럼 말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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