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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마저 외국계 선택 … 독일 토종 로펌 한때 초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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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일 법률시장이 개방되자 초대형 영미계 로펌들은 금융·투자·M&A 등 기업 자문과 국제송무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수익이 많이 나는 분야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 것이다.”

 지난달 독일 로펌인 CMS 하쉐 시글(Hasche Sigle)의 슈투트가르트 사무소를 찾았다. 이 로펌은 등록 변호사 수 기준으로 독일 로펌 중 1위다. 앤턴 마우러(Anton Maurer) 대표 변호사는 1998년 개방 후 13년간 독일 법률시장에 불어닥친 변화를 “빅뱅(Big bang·우주의 행성 대폭발)”이란 말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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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반엔 독일 10대 로펌 중 8곳을 영미계가 차지한 적도 있었다. CMS 하쉐 시글과 글라이스 루츠(Gleiss lutz) 등 두 곳만 예외였다. 마우러 대표는 “토종 로펌들이 초기에 고전했던 건 내수 중심이었던 데다 한 도시에서만 사무소 개설을 허용하는 등의 규제가 대형화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며 “특히 지멘스(Siemens)를 비롯한 독일계 대기업들마저 외국 로펌을 택할 때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토종 로펌들의 반격이 시작됐고 시장 판도에 다시 변화가 일어났다. 2010년판 독일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로펌 중 5개가 토종 로펌이다.

 -토종 로펌이 되살아난 비결이 뭔가.

 “그동안 꾸준히 중소로펌 인수합병을 통해 영미계 로펌에 대적할 만한 외형과 실력을 갖췄다. 외국 로펌들이 외면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도 효과를 봤다. 특화된 산업이 있는 도시마다 사무소를 개설하고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계속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객들이 믿고 찾아 오기 시작했다.”

-CMS 하쉐 시글의 성공 비결을 꼽는다면.

 “가족법·노동법·세법 등 19개 분야 전문변호사 자격자를 파트너로 영입해 ‘원스톱(One stop) 서비스’ 체제를 갖춘 것이 결정적이었다. 우린 소속 변호사 509명 중 184명이 전문변호사 자격을 가진 파트너다.”

 개방과 함께 진입해 독일 법률시장에서 7위로 올라선 영국계 로펌 링클레이터스(Linklaters) 뮌헨 본사에서 마이클 라페(Michael Lappe) 파트너 변호사를 만났다. 라페 변호사는 “개방 후 여섯 개의 로펌이 합병된 경우도 직접 봤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영미계 로펌의 대거 진출은 독일 법률시장의 체질 개선을 가져왔다”며 “독일 로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계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라페 변호사는 “향후 우리 로펌의 전략은 수익성이 높은 대형 고객 위주로 재편해 나가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라페 변호사는 한국 법률시장 개방이 한국 변호사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미계 로펌의 진입은 독일 변호사들이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한국 로펌과 변호사들도 뉴욕·베를린·로마 등에 사업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뮌헨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알렉산더 손(39) 변호사는 “요즘 독일 로펌들은 동유럽 국가로 진출하고 있다”며 “한국 로펌들도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뮌헨=조강수 기자

글 싣는 순서

<상> 국내 로펌 ‘서바이벌 전쟁’

<중> 법률시장 빅뱅의 교훈, 독일일본

<하> 개방 파고 어떻게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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