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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통령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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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대통령이 안 보인다. 많은 국민이 보기에 꼭 있었으면 하는 그 자리에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세상일을 보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바로잡으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감사원의 감사위원은 감사 대상인 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고 로비스트 역할을 했고, 은행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장은 청탁을 받고 감사를 막기 위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국토해양부 직원들은 연찬회 명목으로 민간업자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고 현직 과장은 수뢰 혐의로 구속되었다. 군은 멀쩡한 민간 항공기를 향해 사격을 하고 장갑차, 자주포 납품 비리로 얼룩졌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을 두고 ‘밥그릇’ 싸움에 한창이고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무를 태업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나라 살림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이 공동체 모두의 이익이 아니라 사적 이익, 조직의 이익만을 좇아 정신을 팔고 있는 모습들이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조차 “나라 전체가 온통 썩었다”고 했을까.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국정원의 어설픈 공작 실패, 외교통상부의 상하이 스캔들, 수자원공사가 책임져야 할 구미 단수 사태, 구제역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의 한심한 대응 등 정부 정책실패의 사례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보기에도 한심한 상황이라면 그런 정부의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 국민으로서는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일까.

 언제 어디서부터 공직 사회의 도덕성이 실추하고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는지 알 길이 없다. 상대적으로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감독과 견제를 받아온 정치권에 비해 폐쇄적이고 여전히 권위적인 관료 조직은 그만큼 외부 감시자로부터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취약한 국회의 행정부 견제 권한 역시 이런 문제점을 낳게 된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든 이처럼 여러 행정부서가 나사가 풀린 것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책임은 결국 이 대통령이 져야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나라가 온통 썩었다’거나 ‘밥그릇 싸움’이라고 말했을 때 많은 국민이 이에 뜨악해 했던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두고 마치 남의 일처럼 비평하고 훈수 두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방관자적 태도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최근의 국정 난맥은 ‘이명박식 리더십’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집권 초기부터 이 대통령은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분명한 거부감이 있었고, 그런 만큼 정치적 논의보다는 행정 부서와 관련된 실무적·행정적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고 통치자의 이런 태도는 성과와 업적을 중시하게 하지만 그런 만큼 아무래도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에 대한 반대 토론이나 논쟁 제기는 종종 이념적으로 채색돼 거부되었고, 시민사회와 언론의 사회적 비판 기능도 이전에 비해 약화되었다. 집권당조차 대통령의 주요 정책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과 제어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이런 자세로 인해 행정 부서는 외부의 비판과 감시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아온 것이다. 그만큼 내부 조직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비리나 부패의 유혹에도 보다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정 운영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통령이 장·차관들 모아놓고 윽박지르거나 사정 기관을 동원한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며, 그런 이후에야 제도적인 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최근 국민이 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감은 크게 줄어들었다. 저녁 모임에 가보더라도 요즘엔 이 대통령은 아예 거론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재임 후반기라는 시기적 요인 탓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마땅히 책임지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The buck stops here)’. 이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에 적어두고 재임 중 항상 새겼던 문구다. 오늘날 국정 난맥상을 풀기 위한 변화의 출발점도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