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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김정일과 카스트로, 같은 독재 다른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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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주리
사회부문 기자

사소한 결이 때로는 전체를 보여준다.

 쿠바로 떠나기 전에 들었던 사소한 고민이 그랬다. 여행자는 화사한 옷을 입고 싶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서의 화려한 차림은 현지인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 그게 걱정이 됐다.

 그 나라에 도착한 첫날, 그 걱정이 우스운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맑고 푸른 바다와 하늘, 그에 어울리는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옷과 잘 닦은 구두. 쿠바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한 현지인은 “구두와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 구두를 사서 신고, 다음 날 구두를 팔아 식량을 산다”는 농담을 했다. 이런 모습에서 ‘엄숙한 사회주의’는 없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망명자에 대한 탄압이나 연좌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미국에 친척이 있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려다 잡히면, 다시 돌아와 다음 날 일터로 향하면 그만이다. 심지어 미국으로 떠난 젊은이들 중에는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탈북하다 걸리면 사실상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된다. 북한과 쿠바는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김정일의 떼쓰기식 외교와 카스트로의 외교도 많이 달랐다. “무조건 달라”는 북한과 달리 쿠바는 ‘고급 의료인력’을 가지고 협상을 한다. 최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골반 종기 수술을 한 것도 쿠바 의사들이다. 가난한 중남미 나라의 학생들이 쿠바로 와서 공짜로 의학을 배운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감행했다. 최고권력자 자리를 넘겨받은 라울이 “장기 집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는 다른 행보다. 올 초 격렬했던 아랍권의 민주화 혁명을 의식한 80세 노인이 한 선언이라 해도 의미는 있다.

 오래된 권력은 썩게 마련이다. 그 점에서 북한과 쿠바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쿠바는 개혁·개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고급 인력과 문화적 잠재력이 있어 발전 가능성도 크다. 쿠바는 한국과 수교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바나에는 제3국을 통해 들어온 현대·기아차와 삼성·LG전자 제품이 곳곳에서 보였다. 쿠바의 미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됐다.

임주리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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