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여성 승진 차별’ 기각 … 집단소송의 종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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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법원이 월마트 여직원들이 제기한 ‘성차별 집단소송’ 신청을 20일(현지시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뻔했던 성차별 집단 소송은 무산됐다.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경제계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지만 여성계는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해당 소송에 대한 심리가 열린 미국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뻔한 성차별 집단소송이 무산됐다. 미국 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월마트 여종업원 6명이 낸 성차별 집단소송 신청을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대법원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전국적으로 3400개의 각기 다른 현장에서 서로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160만 명의 여직원이 모두 똑같은 성차별을 받았다는 증거를 원고가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월마트를 상대로 한 성차별 집단소송 길은 막혔다.

 이번 소송은 2001년 시작됐다. 캘리포니아주 피츠버그 매장에서 근무하던 베티 듀크스를 비롯한 6명이 “월마트가 여성이란 이유로 임금·승진에서 차별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게 계기가 됐다. 6년을 끈 주법원 소송에서 원고는 예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져 기세가 꺾였다. 그런데 지난해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이 주법원 판결을 뒤집으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월마트 전체 매장에서 여성 지배인은 14%밖에 안 되는 반면 비정규직인 하급관리직엔 80%가 여성”이라는 원고의 증거 제시를 법원이 “이유 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 여종업원 6명의 소송이 전국의 월마트 여직원 160만 명을 대표하는 집단소송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자 법정 공방의 양상도 달라졌다.

여성인권단체와 정치권은 이를 직장 내 여성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당시 여성 하원의장이었던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원도 여성단체를 응원하고 나섰다.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월마트는 물론이고 여직원을 많이 뽑는 코스트코 같은 할인 체인에서 골드먼삭스와 전자회사 도시바까지 비슷한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월마트가 패소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미국 기업이 엄청난 부담을 새로 떠안게 돼 자칫 경기 침체를 악화할 수 있다”며 여론몰이에 골몰했다.

 그런데 이날 대법원이 월마트의 손을 들어 주자 경제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월마트는 “이번 승소는 월마트뿐 아니라 미국 기업 전체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미국의 ‘묻지마 집단소송’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시카고 법률회사 커클런드앤드엘리스의 크리스토퍼 랜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196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집단소송 판결”이라며 “무분별한 집단소송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60년대 관련법이 정비되면서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봇물을 이뤘다. 소비자 2~3명만 비슷한 피해를 당해도 이를 집단소송으로 제기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전문 변호사까지 붙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국 기업도 집단소송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계는 반발하고 있다. 전미여성법률센터 마르시아 그린버거 대표는 “집단소송에도 대마불사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며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거기서 일하는 여성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고인 듀크스를 비롯한 월마트 여직원도 “소송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며 “집단소송이 안 되면 개별소송을 통해서라도 월마트의 성차별에 대항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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