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노인의 가치 스스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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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2011 세계보건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이 80세를 돌파했다. 평균수명 80세는 역사상 최초다. 197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61.93세였으니 불과 40년 만에 ‘일생’이라는 개념이 20년이나 늘어나 버린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평균연령 40대에 이미 손자를 보고 노인 대접을 받았다. 과거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 사람들은 인생을 두 번 사는 셈이다. 60세까지 사는 게 얼마나 귀했으면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로 회갑연을 준비하기도 했지 않은가. 때로는 임금이 직접 나서 70세를 넘긴 신하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기로연(耆老宴)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급격한 서구화와 산업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효 사상의 본질을 크게 훼손시켰다. ‘빨리빨리’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했던 탓이다. 특히 산업사회에서 노인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자연 노인에 대한 대접도 소홀해졌고,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패륜 범죄까지 일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지난 20세기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다시 노인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20~30년 이내에 젊은이 두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느니, 고령화가 재앙으로 닥칠지 모른다는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다. 이제 노인은 더 이상 부양받는 대상이 아니라 훌륭한 경륜을 바탕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충분히 교육받고 육체적으로도 훌륭한 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올해 3월 ‘대한노인회지원법’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이런 시대적 소명을 잘 말해준다. 지난 40년 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노인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노인들이 시대의 부름에 발맞춰 나아가야 할 때다. 지난 시절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노인 스스로 사회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이를 악물고 넘은 분들이다. 이 분들의 의지와 능력이라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이 걱정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사회의 개념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노인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