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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목욕탕을 엿본다

중앙일보

입력

'궁중의 은밀한 곳'. 그 중 침실은 〈왕과 비〉 등 사극을 통해서 심심찮게 드러난 적이 있지만 목욕탕이 공개된 적은 아직 없었다.

지금까지 사대부의 가옥은 물론 그 어느 궁궐에서도 목욕과 관련된 흔적이 발견된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베일을 KBS1 〈역사스페셜〉(26일 밤 8시) '온천궁궐, 온양행궁(行宮)의 비밀'이 걷어 올린다.

역사서 '온궁사실'에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조선시대 왕의 목욕궁인 '온양행궁' (충남 온양)의 실체가 공개되는 것. 행궁이란 국정을 보면서 왕이 살던 서울의 궁궐과는 달리 임금이 잠시 머무르던 별궁(別宮)을 말한다.

제작진은 정조 때 제작된 '영괴첩'에 적혀있는 '온천'이란 특이한 건물의 실체를 취재하던 중 학계에 소개된 바 없는 '온궁사실'이란 책을 입수, 번역하는 과정에서 당시 온양행궁의 규모와 내부시설을 처음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온천욕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양행궁은 중앙에 왕의 침소인 내정전과 집무실인 외정전을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옆에 온천이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세종을 비롯,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 5명의 왕과 사도세자가 이곳을 다녀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피부병과 안질 등 악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

'온궁사실'에는 왕이 온양행궁 행차에 필요한 물건으로 오동나무 바가지와 놋대야. 의자. 수건.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목욕 가운 등을 적고 있다.

온돌을 설치한 동서 쪽의 욕실과 남북으로 있는 양방(凉房. 찬공기를 쐴 수 있는 방) 등 건물 내부 구조와 함께 증상에 따라 온천물에 여러가지 약재를 타서 썼다는 증거도 소개한다.

왕의 행차는 지역주민에겐 고충이 아닐 수 없었다. 충청도 일대에서 역할 분담을 해 말먹이와 식기까지 대는 등 부담이 컸던 것. 사도세자 행차시 군사만 8백명이 보좌했다고 한다.

전흥렬 PD는 "온양행궁은 전체 면적이 6천여평으로 서울 궁궐의 20~30분의 1정도에 불과했지만 홍문관과 사간원, 상서원, 한림원 등을 갖춘 이동정부였다" 며 "이런 치밀함이 6백년 왕권을 지탱하는 힘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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