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은 기 왕성한 채소, 두뇌 발달 도와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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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15면

지난 14일(음력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었다. 대나무가 술에 취할 리 없다. 대 심기에 적당한 날을 가리킨다. 대가 워낙 물을 좋아해 비가 많이 오는 날을 죽취일로 정한 듯하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대나무의 어린 순인 죽순은 40∼50일이면 대나무로 자란다. 죽순은 4∼6월에 땅에서 솟아 나오는데 대개 15∼20㎝(발순 4∼5일 후) 자란 것을 채취해 껍질을 벗긴 뒤 하얀 알맹이만 먹는다.

음식으로 먹는 것은 왕대·솜대·죽순대(맹종죽)의 순(筍)이다. 이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4월 초∼5월 초)은 맹종죽(孟宗竹)이다. 이 명칭의 배경엔 효자담(孝子談)이 있다. ‘맹종’이라는 중국인이 모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엄동설한에 죽순 얻기를 기도했더니 땅에서 죽순 하나가 돋아났다는 고사다. 맹종죽은 전남 담양과 경남 진주·거제 등 연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데 맛은 떨어진다.

솜대는 5월 중순부터 한 달가량 나오는 재래종이다. 대 줄기에 흰 가루가 묻어 있어 분죽(粉竹)이라고도 한다. 아삭거리고 맛이 좋다. 왕대(왕죽)는 가장 늦은 5월 말∼6월 말까지 채취된다. 왕대와 솜대는 안동·강릉·태안반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 마디 사이에 고리가 1개이면 맹종죽, 두 개면 왕대나 솜대다(국립산림과학원 진주남부산림연구소 박남창 연구관).

“죽순쟁이 한 세월”을 한탄하지 않으려면 이번 주말이나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생 죽순을 즐겨야 한다. 재래시장·마트 등에서는 생죽순을 구입하기 힘들다. 산지 택배로 구입하는 것이 요령이다. 제철이 지나면 통조림으로 만족해야 한다.

봄·여름엔 산야가 푸르지만 유독 대나무는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로 탄생하는 죽순에 영양분을 다 내주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런 누런 대나무를 죽추(竹秋)라 한다.

영양적으로 죽순은 저(低)열량·고(高)칼륨·고(高)식이섬유 식품이다. 100g당 열량이 생것은 13㎉(삶은 것 35㎉, 마른 것 190㎉, 통조림 13㎉)에 불과하다. 칼륨이 마른 것 100g에 2595㎎이나 들어 있으면서 혈압을 높이는 나트륨은 거의 없다. 칼륨은 체내 여분의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므로 고혈압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식이섬유도 풍부해(100g당 생것 1.6g, 마른 것 7.4g) 변비·대장암 예방과 콜레스테롤 억제에 유효하다. 죽순의 독특한 식감의 비밀은 식이섬유다. 맛이 밋밋하다고 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씹다 보면 감칠맛이 난다. 죽순 맛을 알 정도면 미식가다.

한방에선 화(火)와 열(熱)을 내려주며 갈증을 없애주고 가래를 삭이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약재로 친다. 따라서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가슴이 답답할 때 먹으면 유익하다. 조선시대 왕족들은 두뇌 발달을 위한 보양식으로 죽순 죽을 즐겼다.

구입할 때는 껍질에 광택이 있고 습기가 적당한 것을 고른다. 전체적으로 굵고 짧으며 무게 있는 것이 양질이다.

죽순은 생것을 삶아 초장에 찍어 먹거나 탕·무침으로 조리해 먹는다. 미역과 함께 끓인 것도 별미다. 죽순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린 맛이 강해진다. 삶아서 하루 정도 물에 담가두면 아린 맛이 거의 사라진다. 삶을 때 고추를 넣으면 감칠맛이 난다. 죽순의 제 맛을 살리기 위해선 되도록 간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로 먹지 않을 때는 삶은 채로 물과 함께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대나무는 잎과 수액(水液)도 먹는다. 잎엔 항염·항균 작용을 하는 퀴논 성분이 들어 있다. 떡을 댓잎에 싸서 찌면 잘 상하지 않는 것은 이래서다. 대나무잎차의 원료는 대부분 산죽(山竹)의 잎이다. 다 자란 대에서 나오는 수액도 마실 만하나 고로쇠 수액만큼 대중화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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