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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재량권’ 없애는 게 온당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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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A는 담배를 사러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주인이 없는 것을 보고 몰래 담배 몇 갑을 갖고 나오다가 때마침 가게로 돌아오는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A는 엉겁결에 소리치며 붙잡으려는 주인아주머니를 밀치고 도망갔지만, 곧 경찰에 체포됐다. 주인아주머니는 경찰서에서 당시 뒤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며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제출했다. 검사는 피해자인 아주머니의 진술을 토대로 A를 준강도상해죄로 기소했다. A는 담배를 몰래 훔치려 했던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당시 아주머니가 넘어질 상황은 아니었고 상해까지 입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A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형법에는 준강도상해죄에 대해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변호사는 A에게 억울하더라도 꾹 참고 말없이 그냥 자백해 형을 절반으로 감경받거나, 아니면 넘어져 다친 것은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해 일부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억울한 점을 말했다가 일부라도 무죄를 받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최하 7년의 징역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억울함을 따지는 곳이 법정이라는 사실은 어린이도 안다. 그런데 A가 법정에서 억울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두 배의 형을 살 수도 있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지난 3월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해 현재 국회가 심사 중인 형법 개정안에 의하면 앞으로 A와 같이 ‘답답한 경우’가 늘 가능성이 있다. 개정안에서는 기존 형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던 작량감경(酌量減輕) 사유를 ‘범행 동기에 참작 사유가 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피해가 회복되거나, 피고인이 자백한 경우’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돈 없는 A가 자백하지 않은 채 억울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순간 징역 7년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작량감경 제도는 법원이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재량으로 형을 감경하는 것이다. 그동안 작량감경 규정을 근거로 법원이 피고인의 형량을 낮춰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전관예우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자 개정안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사유 이외에는 절대로 감형할 수 없도록 형법에 아예 못 박아 두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잘못을 저지른다. 중대한 잘못은 법에 따라 처벌된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사연이 있고, 하나의 죄명으로 묶인 잘못이라도 그 잘못을 저지르는 방식과 모습, 정도 역시 천양지차다. 다양하기 짝이 없는 여러 사정을 일절 무시하고 모조리 똑같은 형벌로 처벌하자는 데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형법이 그동안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구체적인 사정을 세심하게 잘 살펴서 죄인일지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저지른 죄에 합당한 벌로 재판하라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가벼운 처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다. 그렇다고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처벌하자는 태도, 그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과연 문명국가가 할 일인가.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