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세계 최초의 배추값 통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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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배추 값이 꼭 모래알 같다. 움켜쥐려 하면 자꾸 새나간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정부는 자꾸 손을 뻗는다. 벌써 10개월째다.

 지난해 9월이 배추 값 파동의 시작이었다. 배추 한 포기가 1만원을 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중국 배추를 들여온다, 재배를 독려한다, 부산히 움직였다. 약발이 좀 먹히는가 했다. 그런데 이번엔 부작용이 나타났다. 배추 값 폭락이다.

 배추 값 하나 못 잡는다는 핀잔이 듣기 싫어서였을까. 정부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격안정명령제다. 도매시장에서 배추 값이 급등락하지 않도록 경매가 상·하한선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조만간 공청회도 연다. 이 제도가 실효성을 거둘 것인지, 상·하한선 폭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런 도매가 제한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급 조절만으로는 도저히 가격을 잡을 수 없어 이런 방법까지 생각해 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배추 파동 이후 정부가 얼마나 배추 값에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대형마트 바이어는 “비싸다고 안 살 수 없고, 싸다고 많이 살 수 없는 게 배추인데 가격 제한이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세계 최초의 배추 값 통제 실험. 아마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들 것이다. 여기서 던질 질문은 ‘배추에 이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가’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가 배추 사는 데 쓴 돈은 한 달 평균 3498원이었다. 한 달 지출(228만6874원)의 0.15%다. 김치 구입비까지 합쳐도 5365원(0.23%)이다. 반면 사과는 한 달 평균 6545원어치, 귤은 한 달 평균 5952원어치를 사 먹었다.

 배추 값이 뜨거운 관심을 받는 건 김치가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배추 값이 치솟을 때 야당은 “서민의 대표음식인 김치도 못 먹게 하는 정권”이라며 정부를 공격했다. 언론 감각 뛰어난 어느 야당 의원은 국감장에 배추를 들고 나와 사진기자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이런 지경이니 배추 값 안정에 전력투구하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여론이 춤추는 대로 정부가 이리저리 쫓아만 다니면 되겠는가. 배추 값 잡을 노력으로 다른 물가도 좀 챙길 때다.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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