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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함 “배 올라 검색” … 북, 네차례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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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9년 미 해군 추적 받자 북으로 돌아간 강남1호 이달 초 미얀마로 향하던 북한 선박 라이트호가 미 해군 구축함의 추적을 받자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2009년 6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의 강남1호는 미 군함이 추적하자 북한으로 귀항했다. 사진은 2006년 10월 홍콩에 정박 중인 강남1호의 모습. [홍콩=AP 연합뉴스]

본지 6월 13일자 12면.

이달 초 동남아 해상에서 발생한 북한 선박의 회항 당시 미국과 북한, 동남아 국가들 간에 첨예한 외교적 대치가 전개됐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국내 정부 소식통은 이달 초 대량살상무기(WMD)로 전용 가능한 물자와 무기를 싣고 동남아로 향하던 북한 선박이 미국 등의 추적을 받자 공해상을 떠돌다 되돌아갔다고 밝힌 바 있다. <본지 6월 13일자 12면>

 NYT는 “이번 사건은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미 해군의 작전이 잘 결합된 승리”라며 당시의 숨가빴던 외교전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최근 미 당국은 미얀마 쪽으로 향하던 ‘라이트호(M/V Light)’라는 북한 화물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과 미얀마 사이의 미사일 밀거래를 의심해 왔던 데다 해당 선박이 과거에도 불법 수송에 연루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북한이 2009년 유엔의 무기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또는 부품·기술을 수출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의심받고 있다. 라이트호가 미사일 부품을 적재했다고 추정한 미국은 이지스 구축함 매캠벨함을 급파했다. 이 북한 선박은 중미 국가인 벨리즈 선적으로 밝혀졌다. 북한 선박은 조세 부담과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에 선적을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공교롭게도 벨리즈는 미국이 추진하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회원국이다. PSI 회원국은 대량살상무기 의심물자를 선적한 선박을 검색하는 데 협조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벨리즈는 미국의 요청을 받자 해당 선박에 대한 검색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매캠벨함 측은 지난달 26일 상하이 남쪽 부근에서 라이트호에 네 차례에 걸쳐 검색을 위한 승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 선원들은 이를 거절했다. 백악관은 2009년 강남1호 회항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강제 승선에 난색을 표했다. 교전이 벌어질 경우 한반도 안보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물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때마침 당시 워싱턴에서는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관료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매캠벨함 측이 라이트호에 대한 승선을 거절당한 다음 날인 27일 게리 새모어 미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이 나섰다.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의 관리들에게 미얀마로 향하고 있는 라이트호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설득에 나선 것이다. 그는 아세안 회원국 관리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은 반드시 검색받아야 한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의 내용을 상기시켰다.

 이 자리에서 미얀마 관리는 북한과의 미사일 거래 혐의를 부인하며 미국이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미국은 미얀마가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을 사들인 증거를 제시하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미국은 라이트호에 사거리 563㎞의 미사일이 선적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중국·태국·라오스가 사정권에 드는 거리다.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에 위축된 라이트호는 며칠 뒤 공해상에 멈췄고 곧바로 뱃머리를 돌려 북한으로 돌아갔다. 라이트호는 귀항 때까지 미국의 정찰기와 위성의 추적을 받았으며, 귀환 도중 엔진 고장을 겪기도 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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