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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 것만으로도 힘이던 선생님 영면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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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영결식이 1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상주 홍규씨가 선생의 영정을 들고 운구차로 향하고 있고, 영정 뒤로 9일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따르고 있다. [안성식 기자]


고(故)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사회과학원 이사장)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8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영결식장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김정배 고려중앙학원 이사장과 김병철 고려대 총장, 이기택 4·19 혁명공로자회 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허빈 전 베이징대 부총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묵념과 추모사·조사·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된 영결식에서 문상객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헌화했다.

 김정배 이사장은 조사에서 “고인이 끊임없는 고위 관직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며 학문 세계를 지킨 인품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며 “조국 통일의 유훈은 후학의 몫이니 걱정 마시고 부디 영면하시길 빈다”고 기원했다. 김 이사장은 중간중간 눈물을 훔쳤다.

 이기택 회장은 추모사에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나라의 기둥이셨고 우리의 힘이었고 자랑이었다”며 “선생님이 살아온 애국의 길, 정의의 길을 잊지 않고 따르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시신을 안치한 영구차는 고려대 본관 앞에서 김병철 총장과 직원·학생 수십 명의 배웅을 받으며 오전 9시10분쯤 교정을 떠났다. 시신은 고인이 여생을 보냈던 명륜동 자택을 거쳐 이날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지난 7일 향년 91세로 별세한 김 전 총장은 일제시대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으로 끌려갔다 장준하 선생과 함께 탈출했고 광복군의 일원으로 항일운동에 동참했다.

해방 후에는 고려대 사학과 교수 등을 거쳐 1982년 고려대 총장에 선임됐다. 재임 당시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회관에서 농성에 들어가자 경찰 연행을 막기 위해 김 전 총장이 밤새도록 건물 앞을 지켰던 일화는 유명하다.

88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직을 제안했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제자들을 두고 스승이라는 자가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사회과학원을 세워 중국 연구에 힘썼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 운동연구사』와 회고록 『장정』 등이 있다.

글=이한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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