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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재미있는 자연 이야기] ⑤ 야생동물들의 ‘로드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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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8일 새벽 배우 박신양씨는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의 이산포IC 진입로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를 발견했다. 박씨는 출동한 119 구조대원과 함께 다친 고라니를 동물병원으로 옮겼고, 치료를 받은 고라니는 며칠 뒤 일산 고봉산에 방사됐다. 이런 해피엔딩도 있긴 하지만 야생동물이 도로로 잘못 뛰어들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로드킬(road kill)은 전국적으로 한 해 5000건 이상 발생한다.

로드킬은 사람도 위협한다. 2007년 10월 경남 하동의 19번 국도에서는 관광버스가 노루를 피하려다 마주 오던 승합차·승용차와 충돌해 5명이 죽고 13명이 다쳤다. 지난달 30일에도 강원도 영월의 국도에서 고라니를 피하려던 승용차 운전자가 도로 옆 방호벽을 들이받고 숨지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는 멸종위기종인 불곰을 보호하기 위해 2009년 고속도로변을 따라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전자건널목을 운영한다. 전자건널목은 대형동물이 도로를 건너려는 움직임이 적외선 카메라에 포착되면 도로 안내판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하지만 조각난 생태계를 이어주고 동물의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생태 이동통로를 설치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도로공사 등에서도 도로 아래 터널 또는 도로 위를 가로지나는 육교 형태의 이동통로를 많이 만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야생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잘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부실한 것도 많다. 너무 좁거나 자동차 불빛에 그대로 노출돼 동물들이 이용을 꺼리기도 하고, 아예 사람들이 등산로로 차지한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네비게이션을 활용해 로드킬을 예방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로드킬이 빈발하는 고속도로와 국립공원내 도로 구간을 입력해 놓으면, 이 구간을 운전하는 운전자에게 네비게이션을 통해 주의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첨단기술을 동원해 로드킬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처음 도로를 설계할 때부터 로드킬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좁은 국토에 불필요한 도로를 이중 삼중으로 건설하는 일도 자제돼야 한다. 돈 낭비를 줄이는 경제학(economics)은 자연을 지키는 생태학(ecology)과 통하기 마련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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