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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뭐 경기만 하나요?” 스포츠맨들, 경기장 밖의 나눔 경쟁도 프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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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1983, 1997, 2005.

이 숫자들은 프로 야구·축구·농구(여자는 1998)·배구가 출범한 해다. 리그마다 짧게는 6년, 길게는 30년 동안 명승부·명장면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왔다. 그런데 요즘엔 또 다른 경쟁이 불붙었다. ‘팬들에게서 받은 사랑 돌려주기’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구단으로서 팬들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의미에서다. 방법도 다양하고, 선수 개개인의 선행도 활발하다. 공인이자 아이들의 우상이란 점에서 스타들의 선행은 팬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승부조작이나 스캔들 등의 부정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의 강주현 대표는 “구단의 여러 사회공헌 활동들이 일회성이나 과시용에 머물지 않고 구단이 가진 가치에 사회공헌 활동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사랑의 3점 슈터’를 기억하나요

지난 4일 인천 문학야구장. SK 와이번스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 심장수술을 받은 고영재(경기도 평택 송화초3) 어린이가 1회 일일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프로농구 첫해인 97년 ‘3점슛 왕’은 정인교(42) 신세계 여자농구단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사랑의 3점 슈터’란 별칭이 더 친근하다. 3점슛 하나당 1만원을 적립해 기부하는 선수였다. 당시로는 흔치 않은 기부방식이었다.

15년이 지난 요즘엔 선수가 자기 성적에 따라 일정액을 기부하는 선행이 훨씬 많아졌다. 팬들에게는 흥미거리가, 스스로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SK의 이호준(35) 선수는 홈런 하나당 150만원씩 적립해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무릎 인공관절 수술비로 기부한다. 지난달 26일에는 자기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이선용(77) 할머니에게 병문안도 갔다. “수술 후 걸으시는 모습을 보고 ‘참 값진 홈런을 쳤구나’ 생각했어요. 더 분발해서 더 많은 분들께 걷는 즐거움을 선사할래요.”

축구의 골 매칭기부도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유병수(23) 선수는 올 시즌부터 한 골에 100만원씩 스스로 연봉을 깎는다. 그 돈을 모아 시즌 후 인천지역 어린이 복지센터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 뜻에 따르는 것일 뿐”이라는 그는 “그 아이들이 구김없이 자라 남을 돕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농구의 하승진(26·KCC) 선수는 시즌 후 덩크슛과 리바운드 기록을 합산해 500만원을 ‘1000원의 행복’에 기부했다. 야구의 LG 트윈스는 7명의 선수가 안타·삼진·도루저지 등의 기록에 따라 일정금액을 기부한다.

멋진 경기 보고 힘내시길

지난 4월 30일 FC서울과 제주유나이티드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를 앞두고 어린이 100여명이 그라운드에 나와 FC서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시 아동복지시설의 아이들이다. 관중들은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덩달아 즐거워했다. FC서울은 이날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소외계층 아동 1000명을 초청해 ‘어린이 축구관람 체험’ 행사를 했다. 지난해에는 두산 베어스 야구팀이 같은 행사를 했었다.

스포츠나 예술공연을 잘 접하지 못하는 문화소외계층을 초대하는 이벤트는 흔해졌다. 대부분의 구단이 그들에게 경기를 무료로 보고 즐기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실 그런 행사에는 “진정성 보다는 구단의 이미지 홍보가 목적”이라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이에 대해 김기영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홍보팀장은 “얼마 전 한 수녀원의 아동 30명을 초청했지만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며 “생색 좀 내보려고 그런 행사를 할 만큼 우리 스포츠구단들의 수준이 낮지는 않다”고 말했다.

시즌 끝나고 더 바쁘다

지난달 3일 김요한(왼쪽)조용욱 선수 등 LIG배구단이 한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진=LIG 배구단 제공]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5월 3일 수원 장안구의 어린이 보육시설 ‘꿈을 키우는 집’에 키다리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LIG 그레이터스 배구선수들 22명. 시즌이 끝나고 달콤한 휴식을 가져야 할 그들이 일일 봉사자로 나선 것이다. 아이들은 장대 같은 선수들을 보자 탄성을 연발했다. 선수들은 보육원을 청소하고, 준비해온 치킨과 피자를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배구도 가르쳐주고 함께 놀이도 했다. 김요한(26) 선수는 “봉사라기보다는 동네 꼬마들과 모처럼 어울려 논 기분”이라며 “자주 보자고 약속했으니 꼭 지키겠다”고 했다.

시즌을 끝내고 봉사활동을 매개로 팬들과 만나는 사례다. 지금부터 가을까지는 겨울종목인 농구·배구 선수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때다. 삼성 썬더스 농구단은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협약을 맺고 사회복지시설의 형광등 교체작업을 한다. 큰 키를 살린 아이디어다. 6월 경기도 파주의 한 장애인시설이 첫 봉사장소다. 봉사에는 삼성 썬더스 팬들도 함께할 예정이다. 삼성 블루팡스 배구단과 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도 매년 9·10월께 하고 있는 복지시설 방문봉사를 올해도 계속한다.

야구와 축구 쪽도 마찬가지다. 이대호(29·롯데 자이언츠) 선수가 해마다 1만장의 연탄을 마련해 독거노인들에게 배달하는 봉사는 벌써 5년째다. “어린 시절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시작한 일이다. 매번 40여명의 팬들이 함께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FC서울의 이승렬(22) 선수는 지난 1월 마포구 행복나눔 푸드마켓에 500만원을 기부하고 일일 봉사활동을 했다.

‘남몰래 선행’도 많아

축구의 김신욱(23·울산현대)과 송유걸(26·인천유나이티드) 선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지만 “너무나 작고 당연한 일이라 부끄럽다”며 입을 다문다. 김태준 두산 베어스 홍보팀장은 “팀의 몇 선수는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 지나친 관심이 성적에 영향을 줄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글·사진=박성민 행복동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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