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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성완경교수 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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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만화축제는 지난 10여년간 그 숫자가 많이 불었다. 불어권 만화축제만 연중 거의 50개가 열린다. 그중 가장 성공한 축제로 꼽히는 것이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이다.
매년 1월의 마지막 주말을 끼고 나흘 남짓 열리는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이 도시 인구의 두배가 넘는 사람들이 프랑스와 유럽 각지로 부터 몰려든다.

앙굴렘은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보르도행 테제베(TGV)를 타고 2시간2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샤랑트강과 코냑지방을 굽어보는 구릉 위에 12세기 후반에 지어진 성당과 거무튀튀한 색깔의 이끼 낀 성벽, 구부러지고 경사진 돌을 깨어 만든 포장도로 등에서 인구 8만의 중세풍 소도시 특유의 편안한 호흡이 느껴진다.

앙굴렘 만화축제의 인상은 이같은 도시 분위기와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행사가 열리면 도시 전체는 행사장, 또 축제장이 된다. 행사의 핵심인 출판사별 만화도서 및 판진(아마추어작가들이 만든 비상업적 만화)전시판매와 사인회, 포럼, 계약상담 등은 도심 광장에 임시로 설치된 커다란 서커스 천막같은 가건물속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그밖의 크고 작은 다양한 전시와 부대행사는 모두 쎄엔베데(CNBDI.국립만화영상센터)를 비롯해 시청.법원.경시청.학교.성당.갤러리.서점 등 기존 공간에서 진행된다.

수치상으로 행사를 요약하면 약 30개 정도로 분산된 총 3천여평 정도 전시공간에서 2백20개 안팎의 참가 출판사와 전시 출품자들이 '7세에서 77세까지' 의 20만 관객들과 만난다. 그동안 '국제저작권시장' 이라는 별도의 상담공간에서는 20여개국에서 온 2천7백명의 만화관련 전문직종 종사자들과 4백30여명의 출판사 마케팅 담당자들이 약 5백여건의 저작권 계약협상을 진행시킨다. (1999년 통계 기준)

잘 연출된 유명 만화가의 전시회는 축제의 꽃. 프랑스가 자랑하는 만화가인 '지로-뫼비우스' 전을 비롯,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가인 '로버트 크럼' 전, 만화잡지 '필로트' 의 창설자이자 '아스테릭스' 로 유명한 불어권 만화의 대부 '우데르조-고시니' 전 등은 가장 주목받은 전시였다.

또 독립만화 출판사로서의 성공적 궤적을 보여준 '라소시아숑 출판사 10년' 전과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사이버전시인 '퀘벡만화가 특별전' 역시 관심을 모았다.

만화페스티벌은 창작자, 곧 저자들간의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뉴스의 초점은 자연 누가 상을 받느냐에로 쏠린다. 앙굴렘페스티벌에는 앙굴렘시가 수여하는 그랑프리 외에 12개의 부문별 상이 있다. 가장 초점을 모은 앙굴렘시 그랑프리는 이례적으로 여성만화가인 플로랑스 세스탁에게 돌아갔다.

이번 앙굴렘 축제의 캐치프레이스는 밀레니엄을 의식한 때문인지 '앙굴렘 레엥방트 앙굴렘(앙굴렘이 앙굴렘을 재창조한다)' 이었다. 이것은 다시말해 '만화가 만화를 다시 창조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라는 물음과 상통한다.
만화는 종합적이고도 유연한 시각서사형식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주류 언어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가장 많이 농축해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그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질 사회적.문화적 '관성' 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갖고 있는 장르다.

90년대는 유럽만화가 문화적 상업적 상승세를 탔던 시기였다. 이것은 프랑스식의 비교적 안정된 심미적 성향의 독서인구의 존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 호황이 다음 십년에도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또한 인터넷 환경이 만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도 없다. 만화가 스스로를 재창조할 힘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CNBDI가 올해 창설 10주년을 맞아 내부의 만화박물관을 확장 이전하기로하고 별도 부지에 신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2003년 개관 예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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