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대 남성 “사랑 받으려면 요리 배워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난달 24일 샘표식품이 운영하는 요리교실 ‘지미원’의 요리강습에 참가한 남성들이 꽁치김치찌개와 해물파전을 만들고 있다. 매달 지미원에서 열리는 24번의 요리강습 중 2번은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남성 전용 요리교실이 시작된 건 지난해부터다.


“꽁치를 넣으면 김치찌개가 비리던데요. 그럴 땐 어떻게 하죠?”

 “그래서 마늘과 생강을 마지막에 넣는 거예요. 뚜껑을 열고 끓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필동의 샘표식품 건물 10층의 요리 실습실에서 열린 요리 강습. ‘꽁치김치찌개의 비린내 제거법’이란 난이도 높은 질문을 던진 이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도, 갓난아이를 둔 새댁도 아니었다. 단정한 양복 차림에 희끗희끗 새치까지 있는 중년 남성인 양석주(56)씨였다. 양씨뿐이 아니었다. 이날 강습에 참여한 수강생 15명 모두 남성이었다.

 올해로 9년째 운영되고 있는 샘표식품의 요리교실 ‘지미원’. 기업이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요리교실이란 타이틀을 가진 지미원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요리하는 남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2006년 147명이던 수강생이 지난해엔 295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남성 수강생이 꾸준히 늘면서 지난해부터 아예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요리교실을 개설했다. 월 1회였던 강습이 개설 4개월 만에 월 2회로 늘어났을 정도로 인기다.

 이날 직장 동료 2명과 요리강습에 참석한 손윤규(29)씨는 “자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먹는 것도 물려 직접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왔다”고 했다. 미혼인 손씨는 “결혼을 하더라도 맞벌이를 할 텐데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씨의 말에 맞은편에서 요리를 하던 정영석(40)씨가 “그래야 아내한테 사랑받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두 아이가 크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정씨의 아내는 1년 전부터 부산에 살고 있다. 그는 “교육비가 워낙 많이 들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여유 있게 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내도 일을 하는 만큼 남편도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남성 수강생의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연령대도 높아졌다. 이날 참석한 수강생의 절반은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양석주씨는 “어머니께서 부엌일을 주로 했는데 연로해 힘에 부쳐 한다. 아내도 일을 하는 상황이라 말 그대로 먹고 살려고 요리를 배운다”며 웃었다. 스물다섯 된 딸이 있다는 그는 “딸 아이가 바깥 일을 하며 꿈을 펼칠 수 있게 요리 잘하는 사위를 맞고 싶다”고 말했다.

 지미원 이홍란(44) 원장은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요리를 배운다’는 60~70대 남성도 있다”며 “젊은 남성들은 요리에 관심이 있어 오지만 중년 남성은 요리를 해야만 하는 필요성 때문에 오는 이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메뉴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한식 중심이던 메뉴는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졌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나 일본의 가쓰동에서부터 인도의 탄두리 치킨·태국의 똠양꿍 같은 메뉴까지 만들지 않는 게 없다.

  정선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