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봉주의 홀로서기 결실 맺었다]

중앙일보

입력

이봉주(30)는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소속팀인 코오롱과의 불화 속에 마라톤의 대부 정봉수 감독 곁을 떠난 지 어언4개월. 지난 가을 정든 대치동 숙소를 떠날 때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던 이봉주의 다짐은 결국 이날 한국 최고기록과 시드니올림픽 출전권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사실 이봉주가 코오롱을 떠날 때만 해도 그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주변에서는 회의적인 눈길이 대부분이었다.

4월 런던마라톤(12위) 부진후 고질적인 왼발 부상이 악화돼 그해 11월 예정된 뉴욕마라톤 출전이 좌절된 데다 신체리듬까지 뚝 떨어져 "이제 이봉주는 끝났다"는 얘기도 들렸다.

심지어 9월 이봉주가 숙소를 무단 이탈하자 일부에서는 "마라톤보다 여자친구에 관심이 많다"는 악성루머까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봉주의 이탈에 이은 팀 결별은 은퇴를 위해 빌미를 마련하는 것이란 억측까지 나왔다.

이봉주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는 오히려 세계정상을 향한 그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코오롱을 떠난 뒤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 대한체육회의 응급조치로 지난 11월 태릉선수촌에 입촌, 오인환 코치의 지도로 정리훈련을 했고 다시 충남 보령과 경남 고성 해안도로를 달리며 이를 악물었다.

"고기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푸념이 나올 만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원이 열악했으나 와신상담, 눈물을 삼키며 하루 40-50㎞의 강행군을 견뎌냈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인가. 마라톤 애호가들의 지원 속에 차디찬 겨울바람을 뚫고 훈련에 매진해온 이봉주는 지난 8일 스포츠용품사인 휠라와 후원계약을 맺어 날개를 단 뒤 마침내 13일 도쿄마라톤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날 레이스는 특히 일본기록(2시간6분57초) 보유자인 이누부시 다카유키와의 한-일간 자존심싸움에서 이겼다는 점에서 이봉주의 진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누부시는 이번 대회에서 4위에 그쳤다.

이봉주는 "이제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도쿄=연합뉴스 문영식특파원·김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