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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인사이드] 샤넬은 왜 만만해 보였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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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샤넬은 ‘클래식백’과 ‘2.55(사진)’의 가격을 인상했다. 평균 25%, 최대 140만원 올렸다. 2009년 여름 460만원에 판매되던 2.55 빈티지 점보는 그동안 세 차례 올라 698만원이 됐다. 큰 폭의 잦은 인상은 잠재적 구매자에겐 부담이다. 그렇다고 해도 반응이 좀 민감하다.
4월 19일 첫 보도 후 ‘샤넬 핸드백 가격 인상’으로 포털에서 검색된 기사가 24건이다. ‘사넬 가격 인상 그 여파는 어디까지’ ‘백 값이 차 값 되나’ 같은 기사들은 대체로 비난의 어조다. 그런데 ‘신라면 블랙 가격 인상’으로 검색된 기사는 4월 12일부터 지금까지 196건. 누구나 먹는 라면 값에 비해 샤넬백 값에 관한 뉴스가 과하다. 샤넬의 가격 인상은 이만큼 주목받을 일이었을까.

우리가 명품이라고 통칭하는 것이 다 같지는 않다. 장인이 만든 것도,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도 있다. 샤넬은 에르메스와 함께 ‘럭셔리 중의 럭셔리’로 꼽힌다. 자타 공인 값지고 귀하고 특별한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명품군(群)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에르메스에 비해 만만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높은 인지도 탓이기도 하고, 다른 이유도 있다. 여기에서 샤넬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오해가 비롯된 듯하다.

누구나 샤넬을 안다. 퀼팅·체인·사각 잠금장치 등은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의 오랜 상징이다. 하지만 종종 대담하고 재기 발랄한 제품도 선보인다. PVC·나일론·데님처럼 가벼운 소재로 만든 가방은 '저렴한' 가격표를 달게 된다. 반면 에르메스는 모든 가방에 가죽과 실크, 캔버스가 아닌 소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브랜드를 과시하고 싶은 거라면 표도 안 나는 비싼 에르메스보다는 ‘더블 C’ 로고가 드러나는 나일론 샤넬백을 사는 게 싸고도 쉬운 길이다. 한 패션 관계자는 “(에르메스보다) 아이디어 넘치는 샤넬에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이런 창의성이 부작용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또 하나는 희소성을 지키는 방식이다. 샤넬 측은 “물가 등 상황에 따라 가격을 정한다”고 인상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 인상 때는 ‘칼 라거펠드가 샤넬이 너무 흔해졌다고 느껴서 올린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가격으로 접근성을 줄이는 것인데 설득력이 있다. 반면 에르메스는 공급 자체를 제한한다. 에르메스의 아이콘인 버킨백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한참 기다려야 내 것이 된다. 샤넬은 모아 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에르메스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최상위 브랜드인 샤넬이 감당할 수 있는(affordable) 브랜드로 보였던 게 아닐까. “샤넬은 꿈꿀 수 있지만 에르메스는 꿈도 못 꾼다”고 느꼈음직하다는 얘기다.
아마도 샤넬은 또 가격을 올릴 것이다. ‘샤넬, 드디어 1000만원’ 같은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샤넬은 수요·공급이나 효용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다. 값을 올려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당연하다. 샤넬을 갖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차라리 라면까지 ‘블랙 라벨’을 달게 된 과시적 소비의 확산에 더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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