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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자생지 복원 나선 천안시야생화연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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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뚜렷해 식물 자생조건이 좋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사통팔달 고장인 천안에도 수많은 야생식물이 동네주변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다. 특히 천안을 대표하는 광덕산, 태조산, 성거산에 가면 조그맣게 꽃망울을 터트리며 옹기종기 피어난 야생화를 많이 볼 수 있다. 야생화를 사랑하는 주민이 모여 연구회를 만들었다. 산과 들에 씨를 뿌리고 전시회를 여는 등 야생화 자생지 복원운동에 나섰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천안시야생화연구회는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멸종위기 식물을 연구해 천안을 야생식물 보고로 만들어 나간다는 꿈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임무웅 위원, 김원동 감사, 홍융표 회장, 이현복 부회장. [조영회 기자]

주말마다 전국 산과 들 누벼

앵초, 투구꽃, 쥐손이풀, 터리풀, 구슬붕이, 산국화, 고마리…. 평소 들어 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들이다. 듣기만 해도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야생화는 각기 다른 이름처럼 저마다 다양한 자태를 뽐낸다.

 천안시야생화연구회(회장 홍융표)가 얼마 전 천안시농업기술센터에서 야생화 전시회를 열었다. 회원들이 가꾼 바위솔, 조팝나무, 말발도리 등 분화 300여 점이 시민들의 시선을 잡았다. 천안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연구회는 앞서 광덕산에서 야생화 파종행사도 가졌다. 춘란 100여 점과 마타리, 범부채, 취나물 등 야생화 종자 45만개를 산과 들녘에 뿌렸다. 시민에게 자연자원인 야생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다.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주민 40여 명이 2008년 2월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우연히 발견한 야생화를 보며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만화작가, 사진을 찍으며 야생화의 소박하면서도 작고 화려함을 새삼 알게 된 사진작가, 야생화가 좋아 주말이면 전국 산야를 찾아 다니는 교사를 비롯해 주부, 회사원, 개인사업가 등 직종도 야생화만큼이나 다양하다.

 직업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천안이 다른 지역보다 야생화를 재배·생산하는 농가가 많은 데도 주민들의 관심이 낮아 늘 마음속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같은 생각은 같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매년 전시회를 열어 야생화의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산과 들에 야생식물 씨를 파종하는 행사도 갖는 등 야생화 자생지 복원운동에도 나섰다. 이 밖에 현지 교육과 자생지 탐방, 생활 원예 교육, 주민과 함께하는 야생화 작품 만들기 등 연구회의 역사는 짧지만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다.

천안은 야생식물 보고(寶庫)

천안엔 천남성, 병아리난, 부처손, 노랑매미, 하늘말나리, 물매화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 천안시야생화연구회는 이 지역에만 300~400여 종에 이르는 야생화가 자라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지면 훨씬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꽃도 꽃이지만 꽃에 붙여진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야생화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른봄 광덕산을 오르다 보면 황금색 복수초가 보인다. 동양에선 ‘영원한 행복’이라는 뜻인데 서양에선 ‘슬픈 추억’이란다.

 산동백이라는 꽃도 있다. 일반적으로 동백꽃은 붉은색을 띠지만 김유정의 단편 소설 『동백꽃』에는 꽃을 노란색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소설에서의 동백꽃은 생강나무라 불리기도 하는 산동백을 말한다.

 꽃말에 얽힌 사연과 이야깃거리도 가득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성 야생화인 사위질빵이라는 식물이 있다. 옛날 남자가 장가를 가면 신랑의 힘이 얼마나 센지 본다며 사람들이 무거운 지게를 지고 동네를 돌게 했다고 한다. 사위가 안쓰러웠던 장모는 지게 끈을 뚝뚝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으로 미리 매어 놓았다고 해 그런 이름을 얻게 됐다. 장모의 사위사랑이 가득 배인 이름이다.

꽃봉오리가 붓 모양을 닮아 붙여진 붓꽃도 있다. 옛날 칼 잘 쓰는 겸손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자신이 최고의 칼잡이라며 교만해지자 옆에 있던 한 노인이 번개 같은 행동으로 지팡이로 내리쳐 죽였다고 한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젊은이의 스승이었다. 스승은 죽은 제자를 뒷산에 묻었고 무덤에서는 칼과 같은 잎에 싸여 후회하는 듯 고개 숙여 겸손히 피어난 파란 꽃을 보고 붓꽃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야생화에 담긴 이야기를 전시회나 교육을 통해 알리는 게 연구회의 역할이기도 하다. 천안시야생화연구회는 앞으로 산야에 있는 야생식물들을 담아 도감을 발간할 예정이다. 아울러 흥타령 축제에도 참여해 야생화작품전을 여는 등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무늬종이나 희귀종 번식을 위해서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천안시야생화연구회가 발견한 흰색 금낭화의 모습. 옆에는 꽃잎 뒤쪽에 꿀주머니가 매의 발톱처럼 안으로 굽었다고 이름 붙여진 매발톱꽃. [조영회 기자]


볼거리 가득한 야생식물원

천안시야생화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홍융표 회장은 천안시 성남면에서 ‘들꽃세상’이라는 야생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낮은 산자락 비닐하우스에선 2300여 개의 춘난이 자라고 밖에는 150여 종의 야생화가 소박하면서도 수줍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9900여 ㎡의 식물원에는 톱날 모양의 노란잎이 인상적인 톱풀을 비롯해 매발톱꽃, 자운영, 기린초, 금낭화, 복주머니난, 작약, 창포, 으아리, 인동, 솜방망이 등 다양한 야생화가 관람객을 맞이 한다.

특히 이곳에는 주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종 야생화가 색다른 볼거리다. 분홍색 빛 금낭화 옆엔 흰색 금낭화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라색이 아닌 하늘색 매발톱 꽃, 분홍색이 아닌 흰색 꽃잔디, 초록잎에 노란 무늬가 들어간 둥글레 잎 등 조금만 걸어도 곳곳에 눈에 띤다.

 천안시를 대표하는 꽃인 개나리도 눈길을 끈다. 황금개나리와 하얀개나리가 있는데 구갑무늬(거북의 등딱지 모양과 비슷한 육각형 무늬나 모양)를 한 잎이 모두 노란색과 흰색을 띠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개나리 꽃이 만개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밖에 분홍색이 아닌 흰색 해당화, 흰 무늬가 들어간 클로버, 주황·분홍·노란색 인동, 보라색이 아닌 노란색 붓꽃 등이 한데 모여 은은하면서도 수수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홍융표 회장은 “자연에서 이런 꽃을 봤다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작고 미천한 꽃이지만 이 꽃이 함께 모여 다양한 무늬와 색깔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라며 “화려하지도 향기도 많지 않지만 야생화의 독특한 매력을 연구해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대표적인 우리나라 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화=산과 들에 피는 꽃, 사람이 돌보지 않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식물을 말한다. 대한민국은 산세가 좋고 사계절이 뚜렷해 4500여 종의 꽃들이 피고 지는데, 한국에만 자생하는 식물을 특산식물이라 한다. 특산식물은 알려진 종류만 450여 종이 된다. 한국의 야생화는 작고 화려하진 않지만 색이 온화하고 향기가 그윽하며 전체의 조화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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