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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환경리스크평가 도입 배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환경리스크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조치다.

외국기업에는 보편화된 환경경영이 그린라운드라는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은 환경오염을 유발하거나 생태계를 교란하는 생산품에 대한 수입금지조치까지 내리고 있다. 기업이 환경부문에 투자하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대접받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이같은 현실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환경투자가 적거나 환경 관련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많은 업체에 대해서는 외국기업들이 인수합병을 꺼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H그룹의 경우 석유화학공장과 발전부문 등에 대한 매각을 진행하다 인수를 희망한 업체가 환경평가를 벌이는 바람에 암초에 부딪혔었다.

당시 H그룹의 업체를 인수하려한 A사는 토양 및 지하수 오염을 집중적으로 실사하는 등 무려 21개 분야 2백개 항목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유기용제로 인한 토양 및 지하수오염이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은 모지역의 공장은 결국 매각에 실패했다.
나머지 공장들도 향후 환경문제 발생때 면책특권을 달라고 요구하거나 인수자금을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제시해 매각에 애를 먹었다.

미국.일본.프랑스.독일 등에서는 환경배상책임보험까지 등장, 오염정도를 보험료에 반영하고 있다.

스위스은행.덴마크은행.노르웨이 스토어브랜드 앤 스쿠더 투자사 등은 자금을 투자 또는 대출할 때 반드시 환경리스크를 평가, 오염된 땅은 아예 담보로 잡지 않는 등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의 증권감독위원회는 주식을 상장할 때 아예 환경지표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철강협회와 반도체협회 등 국제적인 산업협회들도 환경비용을 따지는 표준모델을 공동으로 제작, 이를 무역과 연계시킬 방침이어서 환경친화도가 낮은 업체는 국제무대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이병욱(李炳旭)박사는 "앞으로 환경문제가 기술개발 못지않은 기업경영의 최대 변수가 될 것" 이라며 "환경투자가 많은 업체가 수익성도 높은 시대가 오고있다" 고 말했다.

정부는 환경리스크 평가제를 받아들이면서 더 큰 효과를 노리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해외매각 등 구조조정과 연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환경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경쟁력이 없는 업체를 자연스럽게 솎아내고 디지털경제 부문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건설교통부가 올해부터 토지이용.이산화탄소 발생량.생태환경.실내환경 등을 평가, 이를 사업승인 심의자료로 활용키로 한 '환경인증 아파트제' 도 수요자의 청약.매입 등에 큰 영향을 미쳐 결국 건설업체의 구조조정을 불러올 전망이다.

특히 금융권에서 환경리스크 평가제를 도입키로 함에 따라 환경개선부담금.배출부과금.수질개선부담금 등을 매겨가며 정부가 직접 규제해 온 정책에서 간접자율규제로 바뀌어 환경관련 민원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업들의 반발이다. 이미 전경련같은 경제단체는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과연 기업들의 반발을 딛고 환경리스크평가제 도입이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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