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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VS 민주당 싸움으로 번지는 저축은행 로비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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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귀남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31일 국무회의 시작 전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여권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폭로 공세를 이어가자 여권이 반격에 들어갔다. 저축은행을 퇴출시키려는 현 정부에 민주당이 오히려 로비를 했다는 주장을 펴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에선 “무책임한 폭로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지난해 민주당의 한 당직자가 지역구 내 부실저축은행을 구명하려는 민원을 해 왔다”며 “당시 이 저축은행은 금융당국으로부터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500억원가량을 증자할 능력이 없으니 BIS 적용을 완화해 달라고 청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민주당 의원이 직접 한 게 아니라 민주당 당직자가 대신 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민주당 저축은행진상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측이 지역구(목포)의 보해저축은행에 대한 BIS 적용을 완화해 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두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당시 “전반적인 점검을 하고 있는데 특정 저축은행만 제외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보해저축은행은 올 2월 영업정지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야권을 겨냥해 ‘부실의 카르텔’이란 표현을 쓰며 공격했다. 김대중 정부 때 상호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허가해 주고 노무현 정부 때 이들에 대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규제를 풀어주게 된 과정에서 특정 지역과 특정 고교 학맥으로 얽힌 저축은행 대주주들과 당시 여권에 속해 있던 지금의 야당 인사들이 커넥션을 형성했다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감사원이 저축은행에 메스를 대던 중 부실의 카르텔을 만든 사람들이 자기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감사원·금융당국과 청와대를 상대로 퇴출 저지를 시도했을 것”이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저축은행 사태가 커져온 걸 보면 일정 부분 성공한 로비라 할 수 있으나 (현 정부에선) 저축은행 감사를 벌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만큼 실패한 로비”라고 주장했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책임이 야권에 더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에서 저축은행 사태 연루자로 실명을 거론한 여권 인사들은 “민주당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이 근거 없는 의혹만 제기하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선 “부산저축은행의 부실은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합병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주장한 박지원 의원, “(부산저축은행 측의) 박종록 변호사는 박영준 전 차관의 친삼촌”이라고 한 이용섭 대변인 등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글=고정애·김승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박지원 “나와 한번 해보자는 거냐”

민주당 의원들 재반격

민주당 박지원 의원(가운데)이 31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해 조영택 의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청와대가 “무책임한 주장에 대해선 책임을 묻겠다”며 민주당에 반격을 가하고 나서자 민주당도 31일 맞불을 놓았다. 특히 민주당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만난 기자들 앞에서 “청와대가 나와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우리보고) ‘말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그전에 청와대 자신들부터 조심해야 한다. (청와대가) 책임을 운운하는데 이것이 공갈인가. 공갈에 넘어갈 박지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그렇게 하면 위축될 줄 알았나 본데, 내가 감옥에서 4년을 살았다. 계속 해보자”고 했다.

 그는 “내가 보해저축은행의 BIS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상향 조정해 달라고 청와대에 부탁하면서 관련 문건을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제출했다고 하는데 나는 경제수석실에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다만 보해저축은행 문제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통화했던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내가 김 위원장에게 전화해 ‘주말에 보해저축은행을 영업정지하면 어떡하느냐’고 하자 김 위원장은 ‘증자하면 문제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증자를 못해 다시 전화했더니 ‘증자가 안 되면 영업정지가 된다’고 했다”고 대화 내용을 밝혔다.

 박 전 원내대표는 특히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 수석이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어떤 관계였고, 무슨 역할을 했는지 밝히지 않으면 내가 밝히겠다. 구속된 신 명예회장과 정 수석은 막역한 사이로 우정힐스 골프장과 청담동 한정식집을 같이 다닌 걸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캐나다에 도피 중인 로비스트 박태규씨가 현재 청와대에 있는 두 사람과 정부 핵심인 한 사람과 막역한 사이”라고 주장했다.

 진상조사위 일원인 박선숙 의원도 청와대를 공격했다. 그는 “이 모든 논쟁의 최종적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 정부가 저축은행 문제를 뻔히 알고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부실 저축은행끼리 합병시키며 부실을 더 키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감사원으로부터 저축은행 부실상황을 보고받고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었지만 그 자리가 바로 전수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무슨 지시를 했기에 그 이후 시간 끌기가 가능했는지, 시간을 끌어 문제를 키웠는데 대통령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박지원·박선숙 의원과 함께 ‘공적 3인방’으로 찍은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정부의 정책 실패와 감독 부실이 오늘의 저축은행 부실을 가져왔다” 고 주장했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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