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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자치권 … 권력은 한족 독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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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네이멍구자치구에서 지난달 24일 시작된 몽골족의 시위를 계기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2008년 3월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시위의 유혈 진압, 2009년 7월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의 한족·위구르족 유혈 충돌에 이어 그동안 비교적 유화적이었던 몽골족까지 불만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대 다수(91.5%)인 한족과 나머지 55개 소수민족 간 갈등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불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49년 들어선 신중국은 건국 초기에는 소수민족에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했다. 47년 네이멍구를 시작으로 65년 티베트에 이르기까지 직할시·성(省)과 동급인 자치구(自治區) 5개의 설립을 승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적 통치권을 한족이 휘둘렀다. 이름뿐인 자치구 행정수장 자리에는 소수민족 인사가 앉았지만 대신 권력은 한족 당서기가 차지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이후 중국 정부는 국가 통합과 사회 안정이란 가치를 소수민족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따라 56개 민족을 하나의 대가족으로 여기는 ‘중화대가정(中華大家庭)’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족이 중화대가정의 실질적 주인 행세를 하면서 소수민족의 소외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변방 개발과 일부 관변학자의 왜곡된 ‘역사 공정(工程)’도 소수민족들의 ‘한족 위협론’을 자극했다. 티베트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서남(西南)공정, 신장위구르자치구를 겨냥한 서북(西北)공정, 고구려·발해의 무대인 만주와 조선족 자치주(州) 일대를 겨냥한 동북(東北)공정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한족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했던 칭기즈칸과 몽골족의 역사를 한족의 중국사에 편입해 몽골족의 반발을 샀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이 소수민족 지역의 석탄·철광석 등 지하자원을 개발하면서 상당수 소수민족이 생활 터전을 잃거나 저임금 광부로 전락했다. 이런 가운데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한족이 소수민족을 경시하면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킨 것이 네이멍구에서 발생한 몽골족 사망 사건의 본질로 보인다.

 이제는 중앙정부도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족의 대거 이주와 이권 장악, 소수민족의 소외감 고조, 민족 갈등과 유혈 진압, 정부의 뒤늦은 선심성 투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사태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서울=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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