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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경제 르포] 과일농가, 추석 이른데 사과·배 더디게 자라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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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20일 전남 나주에서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민 최종기(64)씨가 자신의 하우스에서 예년보다 훨씬 알이 작은 배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씨는 추석 대목에 맞춰 배를 출하하기 위해 하우스에 불을 때는 등 비상책을 쓰고 있다.


지난달 20일 오전 9시. 전남 나주시 신포면의 한 하우스배 재배농가. 1320㎡(약 400평) 규모의 하우스 안에는 80그루의 배나무가 들어차 있다. 하우스 안에서 푸른빛을 띠고 있던 열매를 살펴보던 최종기(64)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금 이것보다 1.5~2배는 알이 굵게 나와야 하는데….”

 최씨는 6만6000㎡(약 2만 평)가량의 과수원에서 지난해 3만 상자(7.5㎏기준)의 배를 출하했다. 하우스에서 배를 키워내는 만큼 대부분 최대 대목인 추석 판매 기간에 맞춰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절반도 추석 판매 기간에 출하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추석(9월 12일)이 예년보다 보름가량 빨라서다. 최씨는 “올 1월 초부터 수확기간을 앞당기려고 하우스 안의 온도를 높이고 했다”며 “하우스 불 때느라 들어간 기름값만 1억원”이라며 답답해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사과 산지로 유명한 전북 장수군 장수면의 한 농가. 산 경사면의 4만9500㎡(1만5000평) 규모의 과수원에서는 40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자란다. 지난해 8000상자가량을 수확했다. 예년 같으면 수정이 이뤄져 씨방이 불룩해진 사과꽃들이 가득 찰 때지만 올해는 꽃 대신 사과잎만 가득했다. 4월 추위와 잦은 비 탓에 제대로 수정한 사과꽃이 드문 탓이다. 과수원 주인인 전수용(64)씨는 “35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수정이 제대로 안 된 해는 처음”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사과를 키워내는 데 최소 150일은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그 기간이 너무 짧다”며 “빨라야 9월 첫째 주는 돼야 제대로 익은 사과를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수확이 빠른 편인 홍로 품종의 사과도 추석 판매 시즌 전에 딸 확률은 50% 이하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수 농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연중 최대 대목인 추석 시즌 과일 수요에 맞추기에는 작황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추석 대목에는 과일값이 폭등하고, 정작 과일이 수확되는 추석 이후에는 과일값이 폭락할 판이다.

 작황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겹쳤다. 지난해 같은 봄철 냉해 피해나 이상저온 현상은 덜했지만, 예년보다 보름가량 추석(9월 12일)이 이른 바람에 과일이 익는 기간(숙기)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요 과일 산지의 봄 날씨가 고르지 못해 과일 생육이 부진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른 추석은 불리하다. 지난해 구제역과 올 초 동일본 대지진 등의 여파로 고기와 해산물 대신 과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공급량은 줄어 과일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올 추석 과일 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보다도 품목별로 15~20%가량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산지에서는 수확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일조량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반사필름을 깔아둘 준비까지 마쳤다. 본격적인 광합성량 조절을 위해 과실수의 잎을 따주기도 한다. 아예 난방 시기를 보름가량 앞당기는 하우스 재배 농가도 있다.

 롯데마트 신경환 과일담당 MD는 “기본적으로 올봄에 날씨가 좋지 않았던 탓에 개화기가 늦어졌고, 수정률도 예년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통업체마다 추석용 과일 물량 확보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문경·안동·충주 같은 주요 사과산지뿐 아니라 조기출하가 가능한 장수·거창·무주 등으로 거래 농가를 넓혀가고 있다. 사과나 배 같은 선물용 과일을 대체할 수 있는 수입과일도 늘려가고 있다. 신 MD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늦어도 8월 말에는 과일 출하가 이뤄져야 하지만, 올해는 9월 첫째 주는 돼야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문제는 추석이 지난 이후다. 추석이 지난 다음에는 사과나 배 등의 가격이 추석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유통업계에선 “올봄 배추값 폭락 사태가 가을에는 과일값 폭락으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로선 추석 시즌보다 다소 늦게 과일을 구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나주(전남)·장수(전북)=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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