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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인권법 취지를 훼손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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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에 관한 논의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은 지난해 2월 외교통상통일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나 표현이 법률 요건에 맞는지를 심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북한인권법이 북한을 자극한다며 자당(自黨) 소속인 위원장을 활용해 법안 상정을 막아 왔다. 그런데 여야가 최근 이 법안을 협의해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당초의 입법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법안을 고치려는 대목이다. 북한의 인권 증진뿐 아니라 민생 지원 문제까지 포함해 ‘북한 민생인권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재’와 ‘지원’을 함께 집어넣을 경우 북한인권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북한인권법은 인권이 한 나라의 주권(主權) 문제가 아니고 유엔인권헌장이 규정한 인류 보편의 문제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다.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남한 정부가 할 일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 인권 침해 사례와 그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기록·보존하기 위해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하는 것이다. 북한 인권 관련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생존을 위한 식량도 넓게는 인권의 문제에 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도 이 문제까지 집어넣을 경우 당초 북한인권법을 만들려는 취지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 또 북한에 식량·비료를 지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쪽 정부의 정책의 문제다. 정책은 북한의 태도에 따라 변동성을 가지고 집행할 수 있다. 굳이 민주당이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대북지원 정책을 추진할 근거를 만들겠다면 북한인권법과는 별도로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 입법하자는 것은 결국 북한인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먹는 문제 역시 절박한 문제다. 정말 북한 주민의 기아 문제를 걱정한다면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