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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토부 ‘낙하산 부대’, 체면마저 팽개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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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이라는 아주 낯선 조직이 있다. 선박 외에는 일반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승객·선원·화물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선주(船主)들이 2000년 설립한 상호공제조합이다. 선박회사들과 정부가 50%씩 출자해 만든 비영리법인이다. 이곳은 지금껏 정부 입김 없이 민간 선박회사 임원들이 잘 운영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조합에 연봉 2억원짜리 부회장 자리가 만들어졌다. 국토해양부가 퇴임하는 이장훈 해양과학기술진흥원장을 여기로 보내기 위해 없던 자리를 ‘창조’해낸 것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에 ‘낙하산’이 결합된 경우다. 부회장 또는 사장 자리를 신설하라는 국토부의 요구에 대해 조합 측은 비상근 고문이면 안 되겠느냐며 대안을 냈으나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국토부는 민간 훼리회사 인사에도 간여한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회사인 위동해운 사장 자리는 얼마 전 최장현 전 국토부 2차관에게 넘어갔다. 대인훼리는 한준규 대표가 임기가 1년여 남은 상태에서 물러나고 이용우 전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이 바통을 받았다. 물러난 사장이나 신임 사장이나 모두 국토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낙하산’에 ‘회전문’이 더해진 케이스들이다.

 일반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렇게 ‘작은 자리’까지 공무원들이 다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관의 힘이 미치는 곳이라면 체면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대기업이 이익을 위해 중소기업 분야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비난이 있지만 정부 또한 민간회사 사장 자리까지 챙기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국토부는 수긍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껏 그래 왔고 다른 부처들도 다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고리를 끊어야 할지 난감하다.

 최근 낙하산 인사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불거졌을 뿐 우리 사회의 고질(痼疾)이다. 정부와 권력의 힘이 닿는 곳에는 예외가 없다. 바로 얼마 전에도 이해돈 전 서울 서대문구 부구청장이 주택금융공사 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서대문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284곳 가운데 66%인 186곳의 기관장·이사·감사 중 한 사람 이상이 정치권에서 유입됐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문화예술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문화관광부 산하 공기업이나 단체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낙하산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으며, 공무원 출신을 무조건 낙하산으로 보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안다. 공무원 중에서도 경험과 능력,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하산으로 분류되는 인물 중에는 자격을 갖춘 사람보다는 마당발로 정치적 입지를 넓힌 이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리를 맡은 뒤에는 조직의 생산성보다는 자리 보전에만 신경 쓴다. 낙하산 인사가 비난 받는 이유다. 낙하산의 원조는 청와대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권력과 정치권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