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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27) 문학 세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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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연희 작가

영화배우는 머리가 비었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촬영 스케줄이 아무리 빡빡해도 책을 읽고, 사색을 했다. 젊은 시절 내 정신적 각성(覺醒)을 도운 문학 스승을 처음 만난 곳은 1962년 여름 종로 단성사 시사실이었다.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 초대 시사회에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다. ‘사춘기여 안녕’ 촬영 중 입은 부상으로 붕대 감은 손을 멜빵에 받친 나는 시사회장 쪽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그 중 한 분이 소설 ‘목마른 나무들’의 정연희 작가였다.

 소설 ‘비극은 없다’의 홍성유 작가를 부군으로 둔 정 작가는 미모의 지성인이었다. 라디오와 신문으로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나보다는 한 살 위였다. 정 작가는 내게 “아, 주인공이시로구나”라며 웃으며 입장했다. 그 날 영화기자와 평론가, 지방 극장업자들이 모두 ‘아낌없이 주련다’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신성일 연기 개안(開眼)의 작품’이란 평이 이어졌다.

26일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신성일씨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신씨는 현역 시절 문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김민규 기자]

 얼마 후 세운상가에서 영화 촬영이 있었다. 그날 따라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촬영이 중단됐다. 하늘을 보니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마침 대한극장에서 외화 ‘남태평양’을 틀고 있었다. 워낙 보고 싶었던 터라 극장에 들어갔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중간 휴식시간에 휴게실 모퉁이에 앉아있던 정 작가를 발견했다.

 “정 선생.”

 “미스터 신, 여긴 웬일이에요. 미남이 여자 친구도 없이 혼자 왔어.”

 “촬영 중에 비가 와서 구경 왔어요.”

 우연히 극장에서 만났으니 매우 반가웠다. 이 날 촬영이 더 이상 없었기에 자유시간이었다. 소공동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의 전통한복 전시회에 들른 후 미국공보관실 근처 다동 일식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인 정 작가와 이야기하다 보니 정서적 충만감이 느껴졌다. 나는 즉흥 제안을 했다.

 “비 오는 날 오후 3시는 대체로 쉽니다. 그 때 뵐 수 있겠죠.”

 서울역과 가까운 염천교 부근, 정 작가의 아지트인 다방을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첫 번째 비가 올 때 가보니 정말 정 작가가 있었다. 정 작가는 내 영화를 분석해주고, 각종 문학작품을 알려주었다. 메마른 땅에 뿌리는 빗줄기 같은 지적 쾌감을 선사했다. 비 오는 날 오후 3시는 그렇게 나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시간이 됐다.

 어느 날 저녁 정 작가의 집에 함께 간 적이 있다. 나는 문간방에서 글을 쓰고 있던 부군 홍성유 작가와 인사를 나눈 후, 차 한 잔도 함께 했다. 정 작가는 당시 김활란 박사의 자서전을 쓰고 있었는데,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정 작가로부터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정 작가는 우리 집에 가끔 전화를 걸었다. 무엇보다 훗날 시집까지 낼 정도로 문학소녀였던 어머니가 정 작가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정 작가와 통화하는 걸 좋아했고, 두 사람은 친구처럼 친해졌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비 오는 날 오후 3시, 문학 강의를 듣던 나만의 즐거움을….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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