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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돈 없어 죄수 풀어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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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형기를 마치지 않은 죄수들을 조기 석방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의 인구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 연방법원이 주정부에 내린 재소자 감축 명령을 찬성 5, 반대 4로 합헌 판결했다.

캘리포니아주는 10년 가까이 교도소내 수감 인원이 정원을 초과해 혼란을 겪어 왔다. 현재 주정부 내 33개 교도소의 공식 수용인원은 약 8만명이지만 14만여명이 수감돼 있다. 지난 주말에도 새크라멘토 등 교도소 2곳에서 발생한 폭동으로 150여명이 다쳤다. 2009년 8월 연방법원 판사 3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교도소 내 인구 과밀이 재소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향후 2년간 재소자수를 11만여명으로 줄일 것을 주 당국에 명령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주는 3만명 안팎의 재소자를 한꺼번에 석방하면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연방법원에 위헌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많은 재소자들이 공중전화 부스 크기의 감옥에서 화장실도 없이 지내는 등 육체·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는 잔혹하고 과도한 형벌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범수나 경범죄 재소자를 가석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원을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대법원은 신규 교도소 건설, 다른 주로 수감자를 이감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주정부가 이를 실행하긴 어렵다”며 “사실상 수만명의 재소자를 조기 석방하라는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소송은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보수진영와 재소자 인권을 중시한 진보진영 간 이념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도 루스 긴스버그, 소니아 소토마요르 등 진보성향 대법관과 앤터닌 스캘리아 등 보수성향 대법관 등이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위헌 의견을 낸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법정에서 소수의견을 밝히며 “합헌 판결을 낸 대법관들은 캘리포니아 시민들의 안전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판결이 곧바로 수감자 석방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튜 케이트 주 교정재활부 장관은 “장기적으로 수감 인원을 감축하겠지만 재소자들을 절대 조기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원에 인원 감축 기한 연장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주정부가 조기 석방보다 주 교도소 재소자를 주 산하 카운티 교도소로 이감하는 방안을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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