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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부품 사슬의 저주’ 안 끝났다 … 협력업체 180곳이 부품 50% 이상 독과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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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차는 피스톤링의 70%를 공급하는 유성기업의 파업으로 완성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사진은 24일 포터를 생산하는 현대차 울산4공장 생산라인. [울산=뉴시스]


세계 5위(생산량 기준)의 한국자동차 산업이 암초를 만났다.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링을 만드는 유성기업 노조의 불법파업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산라인을 멈춰세우면서다. 자동차에 필요한 2만 개 이상의 부품 중 외형상 90% 이상 부품 국산화가 이뤄졌으나 특정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점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유성기업뿐 아니라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국내 5개 완성차 업체가 부품의 50% 이상을 의존하는 협력업체 수는 180여 개에 이른다. 5개 자동차 회사의 1차 협력업체 890여 개 중 20%가 부품 시장에서 독과점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등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경우 에스엘(헤드램프), 다스(시트), 센트랄모텍(로어암) 등 10여 개 중소기업이 해당 부품의 생산량 전체를 납품하고 있다. 생산 부품의 75% 이상을 현대·기아차에 공급하는 업체는 30여 개, 50% 이상은 60여 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공급 구조를 수직 계열화 방식으로 연결시킨 전략에 따른 결과다. 정부도 우수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분야별로 한두 곳의 업체를 집중 육성해 왔다. 완성차 회사 입장에서도 한두 곳의 업체를 상대하는 것이 효율적인 품질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그동안 부각돼 왔다. 올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의 주요 부품업체의 가동이 중단되자 도요타, 닛산 등 일본 자동차 회사를 비롯해 거래관계에 있던 BMW, 아우디, 푸조 등도 조업 차질이 생겼지만 현대차는 끄떡없이 견뎠다. 그러나 개별 단가가 1000원 정도인 피스톤링의 국내 공급이 중단되자 지난해 36조원의 매출을 올린 현대차의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이 무너졌다. 부품 공급망의 작은 부분인 1개 업체의 파업이 ‘공룡’ 현대차를 멈춰서게 하는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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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큰 문제는 유성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과 업계에서는 “제2, 제3의 유성기업이 더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완성차 업체 부품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하는 업체가 180여 개라는 사실은 이 중 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현대차 등의 생산량이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현대차의 타임오프제 시행에 따른 현대차 노조의 반발, 7월 이후 복수노조의 도입 등으로 노사관계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주요 부품업체 노조원들이 대부분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어 정치적 파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유성기업 사태는 지난해 6월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다스의 파업에서 이미 예견됐다. 경북 경주에 있는 다스는 생산품의 100%를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씨가 1대 주주로 있는 회사다. 지난해 6월 이 회사 노조는 타임오프 문제로 회사와 갈등을 벌여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당시 현대·기아차에는 해당 부품의 재고량이 4일치밖에 없었다. 다행히 파업이 1주일 만에 막을 내려 현대·기아차의 생산 중단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강철구 이사는 “당시 타임오프제 도입을 저지하려는 금속노조가 산하 경주지부를 중심으로 다스 파업에 개입했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1년 만에 다스 사태는 유성기업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이번 위기가 일회성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대 이남석(경영학) 교수는 “재고를 최소화하려는 도요타의 저스트인타임(JIT) 방식을 도입한 현대·기아차의 시스템이 효율에 치중한 것이 사실”이라며 “글로벌 경쟁력 차원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품 공급 네트워크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저스트 인 타임(JIT)=일본 도요타가 1970년대 완성한 최적의 부품재고 관리체제를 말한다. 일주일 이상의 재고를 없애 관리 비용을 크게 줄이자는 것이 목적. 그러나 올해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부품업체의 생산 차질이 고스란히 완성차 생산 중단이라는 직격탄으로 이어지면서 허점을 드러냈다. 도요타는 JIT 대신 일본 내 3개 거점에 적정 재고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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