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에 빠진 주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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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닥, 따닥, 따닥” 경쾌한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운다. 작고 하얀 공이 테이블 위를 오가는 소리다. 공을 주고받는 랠리가 실수없이 이어지자 탁구를 치는 사람도, 구경을 하는 사람도 신이 난다. “공을 잘 건네고, 잘 받아 랠리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 그때가 바로 탁구 치는 재미를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 김현옥(66·양천구 목동)씨의 얘기다. 탁구 치는 재미에 푹 빠진 두 명의 주부를 만나봤다.

 김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탁구에 푹 빠져 산다. 처음 시작은 손자가 다니는 유치원이 마련한 ‘할머니 탁구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참가자 숫자만 채우면 된다고, 꼭 참여해 달라고 하더라”는 김씨는 “근처 탁구장에 찾아가 망신만 당하지 않게 해달라”며 탁구 강좌에 등록했다. 이후 2주 동안 매일 맹연습을 한 결과 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다. “대부분 초보자들이어서 순위에 들었어요. 덕분에 식구들 앞에 체면 유지는 했죠.” 그가 탁구와 인연을 맺은 계기다.

 그 뒤로도 탁구채를 손에 쥐고 지냈지만 지난 2월에 딸네가 사는 목동으로 이사하면서 잠시 손을 놓게 됐다. 동네에 마땅한 탁구장이 없어서였다. 다시 탁구를 치게 된 것은 광고지에 난 탁구교실 강습 소식을 접하고서다. 1973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단체전 우승과 개인 단식 3위를 한 박미라(60·양천구 신정동)씨가 진행하는 강습이었다. 박씨는 현재 양천구탁구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씨는 단체 수업과 개인 강습에 등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지런히 청소하고, 외손자 학교 보내고, 탁구를 치러 간다. 강습은 일요일을 빼고 주 5일 동안 있다. 하루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도 시간이 나면 탁구장을 찾는다. “탁구를 다시 시작하면서 살이 6㎏ 정도 빠졌어요. 나이 들어 살이 찌면 건강에 적신호라고 딸이 잔소리를 했는데, 지금은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어요.”

 운동을 하면서 발목이 시큰하던 것도 사라졌고, 10년 넘게 지겹도록 먹었던 골다공증약도 끊었다. “지난 3월 검사를 했더니 의사가 더 이상 약을 안 먹어도 되겠다고 하더군요. 탁구 친 덕을 톡톡히 봤죠.”

 친구도 늘었다. “공을 잘 건네고 잘 받는 연습을 상대와 계속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지게 되더라”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목동은 나이 든 사람들이 친구 사귀기 힘든 동네에요. 그런데 탁구교실만 오면 친구가 늘어요. 또래가 아니어도 젊은 엄마들과도 친구가 되니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들고 저로선 일석이조죠.” 김씨의 바람은 꾸준히 연습해 작은 대회에도 나가는 것이다.

 김현옥씨와 같이 강습을 받는 김세리(40·양천구 목동)씨도 탁구를 매개로 한 친구가많아졌다. 탁구를 시작한 지 한 달째인 김씨는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아들 2명, 초등학생 딸 1명을 둔 김씨는 “주로 아이들 또래를 둔 엄마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다양한 세대의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며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돼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에겐 탁구에 대해 조언해주는 이들도 많다. 특히 함께 탁구를 치는 가족들은 김씨의 든든한 조언자다. 김씨는 가족 5명 중 탁구를 가장 늦게 시작했다. 방과후 수업으로 탁구를 꾸준히 배워온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주말마다 탁구를 치러 가는 길에 함께하고 싶어 김씨도 배우게 됐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이 탁구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들이 김씨에게 자세를 가르쳐 주면 김씨는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다. “공부 얘기를 꺼내면 대화가 금방 끊어지는데 탁구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이와 소통하다 보니 대화가 더 부드러워지고 아이들도 자기 얘기를 솔직하면서 확실하게 하게 됐다. 김씨는 “컴퓨터나 게임이 아니더라도 더 재밌는 일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친 것도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말하는 탁구 장점은 “몸치인 나도 배울 정도로 어렵지 않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0.23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공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좌뇌와 우뇌를 자극하고 감성도 키워주는 운동이다. 머리 회전은 물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동원되는 전신운동이기도 하다.

 박미라 회장도 “10년 전만 해도 탁구는 심심풀이로 하는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제대로 배워보자는 움직임이 꾸준히 늘고있다”며 “일반인도 쉽게 배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도 많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치러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양천구에서 열리는 탁구대회는 1년에 2개, 전국대회는 1년에 5~6개다. 박 회장은 “김현옥씨나 김세리씨에게 올 10월에 열리는 양천구 연합회장배 탁구대회 참가를 권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탁구 치는 즐거움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이제 막 탁구의 재미에 빠진 주부 김현옥(왼쪽)씨와 김세리(오른쪽)씨. 양천구탁구연합회 회장인 박미라(가운데)씨는 이들을 가르쳐 구내 탁구대회에 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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