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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왜 음주운전자가 됐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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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호 34면

‘아이 체크(Eye Check)’라는 이름의 재미난 기계가 최근 수입돼 팔리고 있다. 눈동자로 사람의 몸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이다. 망원경처럼 생긴 기계를 눈에 갖다 대고 30초 정도 지나면 컴퓨터 화면에 각종 데이터가 뜬다. 피로 누적도, 음주, 마약ㆍ금지약물 복용 여부 등이다. 미국 항공 우주장비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이 우주 비행사의 컨디션 체크를 위해 개발했다고 한다. 이 시스템 덕분에 격렬한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도핑 검사를 위해 나오지도 않는 소변을 받으려 두 시간 넘게 끙끙대는 곤욕을 덜 수 있게 됐다. 국내 프로경기 단체와 구단들도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얼마 전 음주 기장에게 조종간을 맡길 뻔했던 아시아나항공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영재 칼럼

그런데 이들보다 먼저 아이 체크를 가동했어야 할 팀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다. 이 팀에서 뛰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29) 선수가 지난 2일 밤(현지시간)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추 선수는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경기에 출전하고 있지만 7월 22일로 예정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추추 트레인’이라는 애칭 속에 지역민과 야구팬의 사랑을 받아온 추 선수는 건실하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추 선수가 재판 결과에 따라 선수 생명에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하이오주법에 따르면 음주운전 초범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1000달러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또 180일∼3년까지 면허정지 처분도 따른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추 선수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자발급 거부나 입국 거부를 당할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라는 캐나다 팀이 있다. 추 선수가 토론토 원정을 갈 수 없게 된다면 그의 가치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의 일탈 행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추 선수는 올해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여섯 번째 메이저리거다. 미국 프로풋볼(NFL)과 프로농구(NBA) 스타들은 심심찮게 폭력ㆍ마약ㆍ성폭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웨인 루니(잉글랜드) 같은 유럽의 특급 축구스타들도 끊임없이 추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왜 그럴까.

스포츠사회학 강의실로 돌아가 보자. 4월 10∼11일자 이 칼럼(암환자 최태웅의 ‘투혼과 일탈 사이’)에서 일탈을 과소동조(deviant underconformity)와 과잉동조(deviant overconformity)로 나눠 설명했다. 앞에 든 예들은 전형적인 과소동조, 즉 규칙을 어기고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반면 과잉동조는 팀이나 조직을 위해 과도하게 개인을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부상을 무릅쓰거나 숨긴 채, 혹은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 등이다. 따라서 최태웅 선수가 암 수술 사실을 가족에게도 숨기고 프로배구 전 시즌을 뛴 것은 일탈적 과잉동조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 세계에서는 과잉동조를 ‘투혼’ ‘헌신’ 같은 표현을 동원해 찬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잉동조를 통해 팀과 팬에게 인정받는 선수들이 과소동조의 일탈을 저지르는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든 동료끼리 느끼는 ‘전우애’와 비슷하다. 이들은 ‘팀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고 고생했으니 약간 거칠게 놀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운동 선수들끼리 어울려 과음을 하고 폭력사건에 휘말리고, 심하면 집단 성폭행까지 가는 일탈 행동의 배경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과잉동조→선수들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집단적 자만심→특권의식과 법 위에 있다는 의식→폭음ㆍ폭행 등 과소동조’로 연결할 수 있다.

추신수 선수의 음주운전을 개인의 습관과 품행 쪽에만 맞춰 해석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엘리트 스포츠 세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에서 과잉동조가 나오고 이는 과소동조로 이어진다.

스포츠 스타들이 어린이에게 꿈을 주고 그들의 롤 모델이 되는 게 건강한 사회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신체와 인격을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선수가 엘리트 스포츠로 진출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스포츠의 본질은 ‘싸움’보다는 ‘놀이’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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