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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금요일 새벽 4시] “선배, 여유는 넘치는데 창의성은 언제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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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난데없이 바닥에 엎드리더니 팔굽혀펴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순식간에 75개를 해치웠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25개를 마저 끝내더군요. ING 자산운용 최홍 대표 인터뷰 중 일어난 일입니다. “이왕이면 독자들에게 더 팽팽하고 선명한 가슴 근육을 보여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이었습니다. 체면 차리기 같은 건 없었죠. 프로정신입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최 대표도 그랬죠. ‘남자의 로망’을 하나 둘 성취해 나가는 사나이였습니다. 저도 회사 앞 피트니스 센터에서 ‘가끔’ 운동을 합니다. 하지만 인터뷰나 취재원과의 저녁 약속으로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짬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 대표도 누구보다 바쁜 사람입니다. 눈코 뜰 새 없는 펀드 회사의 CEO니까요.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부터 찾는 저와는 달리 그는 주량인 소주 4병을 마신 다음 날 윗몸일으키기 400개를 한답니다. 그게 해장이라는 거죠. “몸 관리가 돼야 일도 잘된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인터뷰 뒤 팀원들과 저녁을 먹으며 최 대표 얘기를 하다 2차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 점심 때 제가 외쳤죠. “여러분, 속 풀러 갑시다.” 에디터가 일침을 가합니다. “앞으로 윗몸일으키기로 해장하겠다면서. 우리 해장국 먹고 올 테니 200개 채우셔. 속 확 풀리게.” <김준술>

◆짧은 머리,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는 수염, 동그란 안경. 영락없는 ‘레옹’입니다. 택시를 탈 때도, 산책을 하다가도 외국인으로 오해받기 일쑤고, 단골 가게 외상장부에도 이름 대신 ‘레옹’이라 적혀 있답니다. 시인 최승호 교수 이야기입니다. 킬러 레옹 같은 외모와 당대 최고의 동시작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촬영 시간을 코앞에 두고 결정한 사진 컨셉트는 ‘천사 레옹’이었습니다. 레옹의 외모를 한 천사가 아이를 안 듯이 작고 예쁜 화분을 들고 밝은 빛을 등지고 나오는 모습입니다. 영화 ‘레옹’에서도 킬러지만 순수한 레옹이 아끼는 화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 마음을 알 리 없는 최 교수님, 카키색 점퍼에 짙은 자주색 티셔츠를 입고 오셨습니다. 계획이 와장창 무너지는데 눈치 빠른 후배 기자가 인근 의류매장에 뛰어가 흰색 와이셔츠를 사왔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서며 최 교수님 왈. “이제부터는 인터뷰할 때 일부러 대충 입고 다녀야겠어요. 이렇게 옷도 생기니… 허허.” <박종근>

◆‘천재 물리학자’ 임지순 교수님 인터뷰에선 공감 가는 어록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삶의 여유 속에서 창의성이 나온다’였습니다. “저는 연구가 잘 안 풀릴 때는 짧게는 산책을, 길게는 여행을 하며 여유를 만들어요. 뭐가 안 풀릴 때 그대로 쭉 하면 미궁에 빠지고 머리만 아파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여유를 강조해요. 그런데 좀 묘한 것이, 여유를 갖기 위해선 나머지 시간에 열심히 해야 한다, 이 말이죠.” 제 철학과 딱 들어맞는 것 같아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천재 교수도 나와 생각이 같더라”면서 말이지요. 이어진 후배의 한마디가 제 가슴을 후벼 팝니다. “선배는 진짜 항상 여유가 있어 보여요. 그런데 창의성은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성시윤>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50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김준술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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