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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금요헬스실버] 백혈병 잡는 ‘마법의 탄환’ 성적표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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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가 10년째 백혈병을 앓고 있던 이학섭씨에게 “암 유전자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개인사업을 하는 이학섭(68·경기도 수원)씨는 10년 전 백혈병으로 “한두 달도 살기 힘들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지금은 건강하다. 하루 5시간 넘게 일하고 2시간씩 운동도 한다. 13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이씨는 “1년 전부터 암 유전자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주치의 말을 들었다”며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1차 치료제 ‘글리벡’.

그는 1998년 위출혈 증상이 있어 검사를 받다가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어 골수이식은 불가능했다. 이듬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지만 1년 만에 재발했다. 좌절하고 있던 그때 ‘글리벡’이란 신통한 항암제가 미국에서 임상시험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글리벡 개발사인 ‘노바티스’ 한국지사에 연락해 두 달치(두 병)를 780만원에 구입했다. 미국에서도 시판 허가 전이어서 서울시장 추천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씨는 “한 병을 비울 때쯤 암세포가 상당히 없어졌고 두 병째 땐 병이 다 나은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혈병 환자들에게 글리벡은 ‘기적의 약’이었다. 2001년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허가 사상 최단기간에 승인을 받은 글리벡은 올해로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됐다. 국내에선 미국 허가 한 달 뒤 승인받아 2003년 2월 판매가 시작했다. 암세포라는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날아가는 ‘표적항암제’ 시대의 문을 여는 등 백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약이다.

 좋은 악기도 좋은 연주자를 만나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법. 글리벡도 국내에서 백혈병 치료 분야의 1인자를 만나면서 위력을 발휘했다. 그 주인공은 이씨가 ‘생명을 구해 준 신(神)’이라고 표현하는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51) 교수다. 그가 살려 낸 백혈병 환자는 10년간 1000명이 넘는다. 2000년 1000명 이하였던 국내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는 현재 2500명을 넘어섰다. 글리벡을 이용한 김 교수의 의술로 많은 백혈병 환자가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글리벡이 나오기 전인 2000년엔 만성 골수성 환자의 연간 사망률이 20%였으나 지금은 1% 정도”라며 “반대로 우리 병원의 골수이식 건수는 2000년 55건에서 지난해엔 5건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의 임상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현재 그가 돌보는 환자 수가 1100여 명으로 미국 텍사스주의 유명한 MD앤더슨암센터(850명)를 2위로 내려앉혔다는 게 이런 평가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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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약인데도 김 교수가 왜 환자를 잘 치료할까. 김 교수는 “환자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다른 의사들은 조심스럽게 하루 1~2알만 처방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진단을 토대로 자신 있게 하루 4알 이상을 처방한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나타나면 약을 끊었다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다시 복용시켜 치료율을 높인다는 설명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17명으로 구성된 팀이 만성 골수성 백혈병 에만 전념하고 있어 전문성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임상시험의 계획 단계부터 환자 관리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30%쯤인 350명이 임상시험에 참여 중인데 이들에겐 이것이 곧 치료”라며 “최신 항암제를 무료 제공받는 점도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체계화된 치료체제는 김 교수를 이 분야 1인자로 만들었다.

 김 교수는 10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내성(耐性)으로 약발이 듣지 않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치료가 그것이다. 김 교수는 “치료한 환자 가운데 40%는 ‘수퍼글리벡’으로 옮겨 탔다”고 말했다. 수퍼글리벡은 내성이나 부작용으로 인해 복용을 중단한 환자들을 위한 2세대 약이다. 김 교수도 이 같은 차세대 치료제를 이용한 임상을 준비 중이다. 그간의 치료 노하우를 국내 제약회사 연구진의 기술과 접목해 백혈병 치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글리벡=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개발한 항암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1년 신약으로 승인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등의 1차 치료제로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최초의 표적항암제다. 기존 항암제와는 달리 정상세포에는 피해를 주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치료제다.

◆김동욱 교수=1961년생으로 가톨릭대 의대를 나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운영 중인 가톨릭대 분자유전학연구소는 2005년부터 스위스 노바티스사가 지정한 세계 5대 ‘국제 백혈병 유전자 분석 표준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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