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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연금 주주권 행사, 진심 뭔지 모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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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국회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먼저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18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만나 조건부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운용에 관한 한 최상위 기구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사용자·근로자 등 각계각층 20명이 멤버다. 기금운용위는 법에 따라 국민연금의 운용지침을 만든다. 이 지침에 포함되는 게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다. 현행 제도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기금운용위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 전무도 20명의 기금운용위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는 기금운용위가 아직까지 곽 위원장으로부터 어떤 제안 설명도 들은 바가 없다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곽 위원장은 주주권 행사에 대해 당사자인 기금운용위를 제쳐놓고 정치권의 협조부터 구했다. 수순이 비틀렸다. 이래서야 “주주권 행사를 통해 관치(官治)를 하지는 않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공염불로 들리기 십상이다.

 곽 위원장은 이 의장을 만나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1.5%포인트 올리면 기금 고갈 걱정이 사라진다”는 말도 했다. 주주권 행사의 목적이 수익률 높이기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주주권 행사를 통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아질지를 연구·검토하는 것이 우선 아니었을까. 이를 입증한다면 국민연금 가입자 모두 주주권 행사를 환영할 터다.

 그러나 곽 위원장은 이런 연구도, 주주권 행사의 틀을 만드는 기금운용위를 만나는 일도 아직까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주권 행사 카드를 계속 밀어붙이는 인상을 주고 있다. 주주권 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순들을 생략한 채 정치권의 협조부터 먼저 얻으려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이런 곽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서 기업인들은 “이 정부의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곽 위원장 말대로 수익률을 높이는 게 목표라면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주주권 행사 방법과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의 관계부터 차근차근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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