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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펜타곤과 CIA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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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은 수수께끼다. 지휘 라인 말이다.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최정예 부대를 지휘했다. 패네타→윌리엄 맥레이븐 합동특수전사령관→해군 특수전부대(네이비실) 순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빠졌다. 작전(포세이돈의 창) 당시 백악관 상황실을 담은 사진 속 모습 그대로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게이츠는 군령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다음이다.

 같은 시각 패네타는 CIA 본부에서 상황을 통제했다. 그 역사적 사진에서 보이지 않은 이유다. 우리로 치면 최영함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아덴만 여명 작전)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아닌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휘한 셈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직전과는 딴판이다. 특수작전의 선봉을 놓고 티격태격하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펜타곤과 조지 테닛의 CIA가 아니다.

누가 군인이고, 누가 스파이인가. 대테러전에서 펜타곤과 CIA의 경계가 없어졌다. 9·11 동시테러 10년 새 미국의 합동성은 여기까지 왔다. 대통령(최고사령관)이 국방장관을 제치고 정보보좌관에게 군사 작전권을 부여할 수 있는 안보시스템이다. 미국은 변했다. 아니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힘이다.

 9·11로 돌아가보자. 9·11은 정보의 실패였다. CIA는 숱한 공격 징후의 점(點)을 정보의 선(線)으로 잇지 못했다. 동시테러 3개월 전 대통령 일일정보브리핑(PDB)에 ‘빈 라덴 미국 공격 결심’이란 제목을 올리고서다. 대실패는 이어졌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판단을 그르쳤다. 그것은 2003년 이라크 공격의 명분이었다. CIA는 몇 안 되는 의혹의 점을 정보의 선으로 만들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CIA를 비꼰 ‘잿더미의 유산 ’은 재현됐다. 2004년 CIA 국장은 16개 정보기관의 수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의회의 정보개혁법에 따라 국가정보국장(DONI)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정보기관 간 벽이 낮아졌다.

 ‘포세이돈의 창’ 작전의 시발점은 CIA의 9·11 테러 관련범 심문이다. 빈 라덴 연락책의 가명을 알아냈다. 2004년이다. 실명은 3년 만에 파악됐다. CIA가 이 연락책이 들락거린 빈 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를 찾아낸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감청기관 국가안보국(NSA)의 휴대전화 감청이 결정적이었다. 국가정찰국(NRO)의 첩보위성은 그의 차량 번호판을 잡아냈다. 24시간 감시체제가 구축됐다. CIA는 은신처 인근에 안가(安家)를 만들었고, 국가지구공간정보국(NGA)은 은신처 건물을 분석했다. 정보를 한 올 한 올 기워 채워가는 시스템이 놀랍다.

 작전 부대를 보자. 합동특수전사령부(JSOC)는 군의 합동성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80년 육·해·공군과 해병대·특수부대의 이란 주재 미 대사관원 구출 작전(독수리의 발톱)이 통합 지휘체계 부재로 엉망진창이 된 것이 계기다. 이번에 투입된 네이비실은 JSOC 예하 부대 중 하나다. 나머지는 육군(델타포스)과 공군(24 특수전술편대) 등이다. JSOC는 육·해·공 특수부대를 통합한 야전사령부다. 이 부대가 9·11 이후엔 CIA 대테러전 담당 특수활동국(SAD)과 합동작전을 펴왔다. 7월에 패네타가 국방장관으로,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아프간 사령관이 CIA 국장으로 옮기면 군과 CIA의 대테러전 협력은 더 속도를 내지 않을까 싶다. 시스템과 유연성, 법제화를 통한 개혁, 실패에서 배우는 정신은 오늘의 미국을 만든 DNA일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가. 천안함 사건의 교훈은 온데간데없다. 그렇게 합동성을 외쳤으면서도 지금 3군은 다시 자군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한가지다. 국방개혁론이 무슨 신학 논쟁인가. 망각의 주기가 너무 짧다. 칼자루는 국회가 쥐고 있다. 관련 법안이 곧 국회로 넘어간다. 국회는 3군의 이해를 녹이고 국익의 리셋 버튼을 누르라.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