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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중도는 외톨박이 … 법관은 외로움 감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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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홍훈 대법관은 65세 생일인 다음 달 1일 정년 퇴임한다. 변호사 등 재야 출신을 제외하면 역대 세 번째, 27년 만에 처음으로 정년 퇴임하는 대법관이다.

 -대법관이 정년 퇴임하는 경우는 드물다.

 “34년 동안 판사 외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법복은 무겁다. 이 무거운 법복을 이제야 벗게 됐다. 인생이 길어야 100년인데 조금 일찍 퇴임해서 자유롭게 살아봤어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었던 건 신의 축복 같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동료·선후배 법관들과 법원 구성원들에게 고맙다. 떠난다는 실감이 안 난다. 죽고 나서도 내 마음은 사법부에 묻고 싶다.”

 -왜 법관의 길을 택했나.

 “경기고·서울대 65학번 동기인 고 조영래 변호사,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근태 고문 등과 거의 매일 시위를 했다. 검찰 조사에 이어 벌금형도 받았다. 어두운 시대였다. 수사 권력과 행정 권력에 희생되는 억울한 사람들이 제대로 법의 판결을 받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서울대 65학번 동기들이 쟁쟁하다.

 “법대 동기로 황우여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 등이 있다. 황 원내대표가 정치인이 된 것은 의외다. 평생 판사 할 사람 같았는데 성실함이 정치에도 통하나 보다. 손학규 대표는 학생 때부터 친화력이 있었다. 김근태 고문은 우직해서 정치자금 문제로 고민하기에 ‘네가 살아온 대로 하라’고 말해줬다. 43세로 병사한 조영래 변호사는 너무 아깝다. 능력과 신념을 모두 갖춘 위인전에 나올 법한 인물인데. 살아있다면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학생 운동을 했던 것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나.

 “그랬다면 판사로서 곤란한 일이다. 판사는 오로지 법과 법리에 의해서만 재판해야 한다. 다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는 힘은 민주화에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영란 전 대법관, 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진보 성향의 판결로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는데.

 “(웃음) 나는 시골 출신이라 만화를 못 보고 자랐다. 독수리 5형제 뜻도 모른다. 지구를 지키고 의리가 있는 만화 주인공이라기에 그런가 보다 한다. 내가 진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관이 (특정 성향에) 치우치면 법 해석을 잘못할 수 있다.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

 -송두율 교수 방북 사건 등에서는 박시환 대법관 등과 다른 입장에 섰다. ‘스윙보트(swing vote·진보-보수 대법관 대립 속에 표를 행사함으로써 대법원 판결 흐름을 좌우)’ 역할인가.

 “매 사건마다 적절한 법리를 택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나는 가톨릭 신자지만 법관으로서 편협하지 않기 위해 불교 경전도 많이 읽고 참선을 20년 넘게 매일 아침·저녁 30분씩 한다. 참선을 하다 보면 좌우와 동서남북이 없다. (찻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이 잔을 오른쪽에서 보면 왼쪽에 있고, 왼쪽에서 보면 오른쪽에 있다. 치우치지 말고 양쪽을 같이 봐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건전한 상식으로 헌법 정신에 따라 법을 해석해야 한다. 내 철학은 중도와 중용이다.”

 -중도가 우리 사회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있다. 아직 사회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도를 해보면 내 편이 아무도 없다. 외톨박이가 된다. 법관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외로움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한다. (가슴을 두드리며) 수행하듯이.”

 -후회되는 판결은 없나.

 “1977년 영등포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74년 시행된 대통령 긴급조치1호에 따라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양심 때문에 몇 번이나 사표를 내려고 했다.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법관으로서 부끄럽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70년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유죄 판결을 한 판사 명단을 공개했다. 그때 대법관직을 그만두려고 한 달 동안 고민했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1호를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할 때 나 역시 위헌 주장을 펼 수 있었다.”

글=권석천·구희령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 이홍훈 대법관=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 14회(1972년)에 합격했다. 77년 서울지법 영등포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도서관장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60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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