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중국 상인조합의 효시 산서상방(山西商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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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중소기업은 기업 전체 숫자의 99%다. 경제 총량의 60%를 차지한다. 기업세의 50%를 납부한다. 특히 취업 인구의 80%를 떠맡고 있다.” 201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 중에 기자들을 만난 리이중(李毅中) 공업정보부 장관의 말이다. 중국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민영기업이다. 그들은 대형기업의 5배에 이르는 국가 GDP를 창출한다. 반면에 그들이 중국 금융기구로부터 받은 대출 총액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쉼 없이 성장 일변도의 길을 달려온 중국 경제의 핵심 엔진은 민영기업이다. 중소 민영기업 굴기(崛起)의 바탕에는 중국의 전통 상방문화(商幫文化)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 중소기업 정신의 뿌리 상방문화

상(商)이란 한자는 본래 ‘헤아리다’는 뜻이다. 밖에서 안을 본다는 의미다. 멀고 가까움을 헤아리고,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잘 판단해 사방의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을 ‘상(商)’이라 했다. 이에 비해 ‘가(賈)’는 ‘지키다(固)’라는 뜻이다. 쓸모 있는 물건을 잘 지켜 사람들이 사로 오기를 기다렸다가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가 저술한 유가경전 『백호통의(白虎通義)』에 나오는 행상과 좌상의 차이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상’은 수출기업이자 배달 판매업이고, ‘가’는 내수기업이자 대리점 판매 조직인 셈이다.
방(幫)은 패거리이자 결사(結社)다. 이익집단이자 일종의 ‘마피아’이다. 따라서 상방(商幫)은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둔 상인조합이자 기업협회다. 중국은 지대물박(地大物博)하다. 중국인들은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것(他鄕遇故知)’을 4대 즐거움으로 친다. ‘친하건 친하지 않건 한 가족(親不親 家鄕人)’이란 말도 있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다. 이를 장사에 적용해 상방이 생겨났다. 만리타향에 나온 동향인들이 인적·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서로 자금을 융통하고 시장을 개척한다. 상방의 힘이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상방들은 다섯 가지 요건을 갖췄다. ▶해당 지역이 발달된 상업을 구비했다. ▶대량의 자본을 축적한 거상들이 중추가 됐다. ▶경영·제도·문화 등의 측면에서 다른 상업집단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췄다. ▶많은 독립된 상인들이 경영과 경쟁의 필요에 따라 지역 유대감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뤘다. ▶역사상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명청(明淸)시대에 이르러 지역별로 10대 상방이 형성됐다. 개혁개방 이후로는 각 성(省)별로 신상방(新商幫)이 부상했다. 중국 상방의 효시 산서상방부터 중국의 상방 탐험을 떠나보자.

‘주식회사’운영한 산서상방

산서상방(山西商幫)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땅이 기반이다. 그들이 진상(晉商)으로 불리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진상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다. 중국의 명감독 장이머우(張藝謀·61)가 국민여배우 궁리(鞏悧·46)를 캐스팅한 영화 ‘홍등(大紅燈籠高高掛, 1991년)’은 한국에서도 인기였다. ‘홍등’의 무대가 바로 성공한 산서상인의 저택이다.
진상의 효시는 멀리 춘추오패의 한 명인 진문공(晋文公)이 패권을 잡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진상은 송원(宋元)대에 변경무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명(明)에 실시된 개중법(開中法)은 진상을 전성기로 이끌었다. 개중법은 조정에서 변방의 군인들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한 상인에게 그 대가로 소금 독점 판권인 염인(鹽引)을 제공했던 제도다. 소금의 독점 거래권을 확보한 진상은 전 중국의 소금 유통망을 장악했다. 막대한 부를 거둔 진상은 중국 상방의 첫 주자로 우뚝 섰다.
진상은 금융업의 선구자다. 환어음을 취급하는 개인 금융기관인 표호(票號)를 세웠다. 표호는 오늘날 상업은행의 효시다. 북방에서는 표호, 남방에서는 전장(錢莊)이란 이름으로 중국의 자금시장을 장악했다.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돈을 전국적인 범위로 부치고 받는 일을 대행했다. 큰 이윤을 챙긴 것은 불문가지이다.
진상은 또한 오늘날 주식회사 제도와 비슷한 기업의 유한책임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부르는 주식(株式, shares)은 일본식 한자다. 중국에서는 주식을 구펀(股份, 고분)이라고 한다. 공동경영을 선호하던 산서상인은 투자자와 경영자, 직원들의 이익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켰다. 그 제도가 고분제(股份制)다. 예를 들어보자. 한 상점의 자본 총액이 은 10만 냥이고 소유주가 1만 냥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한다고 하자. 이것이 자본고(資本股)다. 경영을 책임 진 상점 주인은 통상 공로주를 받았다. 점원들도 성과와 능력에 따라 공로주의 일부를 상정해 받았다. 이익을 나누는 결산기간이 되면 소유주의 출자금과 경영을 맡은 상점 주인과 직원들의 공로주에 따라 이윤을 분배했다. 소유와 경영은 분리됐다. 일종의 우리사주제를 받은 직원들의 근로 의욕은 높았다.
진상의 대표주자는 뇌이태(雷履泰, 1770~1849)였다. 염료 공장을 세워 성공한 그는 1826년 산서 민영은행 격인 일승창표호(日升昌票號)를 세웠다. 위탁송금업체로 시작된 일승창은 예금과 송금, 자금 대출까지 금융업무 전반으로 사업의 폭을 넓혔다. 뇌이태는 신용을 기업 경영의 철칙으로 삼았다. 직원 임용의 기준은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였다. 이를 통해 고객의 신용을 얻었다. 다음으로 공정한 환율제도를 확립했다. 당시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은의 함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환전해줬다. 암호와 위조방지 기술을 도입해 가짜 어음의 유통을 철저히 막았다. 뇌이태가 성공한 비결이다. 뇌이태 말년에 일승창은 천하의 유통을 책임지는 곳이라는 뜻의 ‘회통천하(匯通天下)’란 칭호를 받았다.

“공정 경쟁은 의리와 이익을 모두 지키는 길”

오늘날 신진상(新晉商)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첫째, 진상은 검소하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산서는 산이 많고 척박한 땅이다. 대부분 빈손으로 시작해 억척스런 창업 정신으로 성공을 이뤄냈다. 근검 절약은 지금까지 이어 내려온 진상의 미덕이다. 둘째, 상도에 따르는 공정경쟁을 중시한다. 진상은 의리와 이익을 모두 지키는 비결을 공정경쟁으로 여겼다. 서부대개발 대형 프로젝트 입찰 때에도 산서 출신 기업은 ‘관시(關系)’를 이용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셋째, 박리다매(薄利多賣)를 선호한다. 열정과 세심한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한다. ‘장사에는 푼돈의 이윤도 소중하다’, ‘이윤을 따지지 않는 장사는 헛장사다.’ 진상이 따르는 격언들이 잘 보여준다. 넷째, 진상은 정보에 밝다. 상황 예측이 정확하다. 진상과 사업을 추진할 때는 실력뿐만 아니라 제품의 시장점유율, 지명도, 판매 추세 등 다양한 시장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보가 파트너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이글은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펴내는 '[친디아저널] vol.57 (2011.05)'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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