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 문이 다이어트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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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다고 가만히 집안에 웅크리고 있었더니 살이 많이 찐 것 같아서 오늘 저녁은 한 번 굶어 볼까 생각하고 밥을 하는 대신 텔레비전을 켰더니 〈세일러 문〉을 하고 있었다. 세라는 자기가 너무 통통하다고 생각하고 살을 빼고 싶어한다. 통통해서 더 이쁘니 살 뺄 필요가 없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뷰티 센터. 하지만 사실 그곳은 나쁜 여왕이 사람들의 생명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날씬해지고픈 여자들은 여기에 와서 점점 기운을 잃어 간다.

여기까지 보고는 음, 지나친 다이어트는 건강에 해롭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도 하고 있구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긴 그런 계몽적인 설교를 한다면 〈세일러 문〉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생명 에너지를 빼앗아가서 세상을 지배하려는 나쁜 놈들은 물리쳐야 하니까 세일러 문이 싸우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세일러 문이 "으앙, 무서워!" 하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자 고양이 루나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싸우면 날씬해질지도 몰라. 한 방 날리면 2킬로그램, 두 방 날리면 5킬로그램은 빠질 거야.” 그러자 갑자기 열심히 싸우는 세일러 문.

재미있긴 하지만 씁쓸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목욕을 하고 나온 세라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으아아아아악" 하고 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화면은 한 가지 색으로 뒤덮여 버려서 세라의 경악을 시각적으로도 확실히 전해 주었다. 그 다음 대사는 “쪘어, 또 쪘어!” 세라는 열 여덟 살이다. 쑥쑥 자랄 나이에 몸무게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그건 살 찌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라는 것이다.

자기 주장대로 뚱뚱하기는 커녕,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통통하지도 않은, 가슴 빼고는 비쩍 마르기만 한 세일러 문이 살을 빼야 한다고 그렇게 야단이니 정말 기가 막힌다. 이건 진짜로 솔직히 말해서, 여자들끼리 서로 너는 뚱뚱하지 않아, 내가 뚱뚱해, 하면서 틀에 박힌 실랑이를 할 때 느끼는 감정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즉 '자기는 저렇게 날씬한 주제에 더 살을 빼야 한다고 하다니 난 어떻게 살란 말이야?' 이런 느낌 때문에 기막힌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몸무게에 끊임없이 신경 쓰면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받은 어린 소녀들이 그야말로 생명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을까 정말 걱정스러워서 그렇다.

남들 가슴 달린 자리에 다리가 달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몸매를 하고 예쁜 주인공 행세를 하는 세일러 문이야말로 어린 소녀들의 생명 에너지를 뺏는 나쁜 여왕이 아닌가. 그렇게 빼빼 마른 여자를 예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여자들이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고 건강한 몸을 가지지 못 하게 해서 세상을 계속 지배하려 하는 나쁜 계략일지도 모른다.

세일러 문이 사실은 나쁜 여왕이라면, 그러면 사랑과 정의는 누가 지키지?
... 호호 아줌마!
뒤늦게 저녁밥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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