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는 아들에게 돈 대신 편지 쓴 아내 현숙한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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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31면

끔찍했다. 아들은 오랫동안 먹을 게 없어 저희 엄마가 아침 굶지 말라고 보내 준 미숫가루를 먹고 끼니를 때웠단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맥도날드를 찾아 1달러짜리 정크푸드를 사 먹고 버텼다고 했다. 울먹이며 걸려온 아들의 전화. 아내는 서럽게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외출을 못할 지경이었다.

삶과 믿음

업보(?)였다. 우리 가정의 원칙이 하나 있다. 대학 졸업까지는 전폭적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그 후엔 독립해야 한다. 아들도 알았다. 아빠·엄마는 할 도리를 다했다는 것을. 제때 졸업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제 탓이었다. 누구도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그날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제는 내가 내 길을 가겠노라고. 그렇게 해서 공부를 접었다. 회사 문을 두드렸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녀석이 찾아갈 변변한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일종의 다단계 판매회사였다. 주방용 칼을 파는 곳이었다. 수습을 거쳐 드디어 대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그렇게 달 반을 넘게 발이 부르터져라 돌아다녀 겨우 칼 두 자루를 팔았다. 주머니는 비었다. 막막했다. 겨우 자존심을 접고 엄마에게 털어놓은 아들의 고백.

이 지경이라면 남편 모르게라도 돈을 보내 아들부터 살려 놓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아내는 돈 대신 편지를 썼다. 감정이 격해 아들과 못 다 나눈 이야기들이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서던 나는 미처 끄지 못한 컴퓨터에 남겨진 아내의 e-메일을 훔쳐보게 됐다. 거기 이런 글이 있었다.

‘준아, 엄마가 너를 돕고 싶지만 돕지 못해 미안해. 너나 우리 가족 모두는 아빠가 정한 규칙을 따라가야만 해’.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성경은 말한다. ‘누가 현숙한 아내를 얻겠느냐. 그녀는 진주보다 더 소중하다. 그런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일평생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남편을 해치지 않는다’. (잠언 31장 10-12절)

며칠 후면 부부의 날이다. 그때 그 형용하지 못할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해 본다.
가-가장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일러 ‘행복’이라 합니다.
나-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것은 ‘소망’입니다.
다-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라-라일락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에 목마름은 ‘그리움’ 때문입니다.
마-마음속 깊이 당신을 사모하다 ‘시인’이 되었습니다.
바-바라볼수록 당신은 내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사랑한다는 수천 마디 말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은 당신의 그윽한 ‘눈길’입니다.
아-아무런 대답이 없어도 여전히 기다릴 수 있음이 ‘믿음’입니다.
자-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은 당신의 ‘미소’가 있어서입니다.
차-차가운 겨울이 와도 두렵지 않은 것은 당신의 ‘숨결’이 느껴져서입니다.
카-카나리아 같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목청껏 소리치고 싶은 것은 당신이 나의 ‘꿈’이 되어서입니다.
타-타인으로가 아닌 함께 걷고 싶은 것은 ‘하나’의 의미를 깨우쳐서입니다.
파-파아란 하늘과 구름 위에 햇살처럼 곁에 머물고 싶은 것은 그대가 나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입니다.
하-하얀 종이 위에 쓰고 싶은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이래서 부부 사랑의 메아리는 존경과 애정이라 한 것일까.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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