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외 출장 ? 실제로는 단체 관광 … 구청장들 수상한 외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제학 서울 양천구청장은 지난해 11월 14명의 방문단을 이끌고 일본을 찾았다. 도쿄도 나카노구와 자매결연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방문단에는 친환경무상급식양천구본부 대표인 김모씨 등 민간인 4명도 포함됐다. 방문단은 저류조시설·쓰레기처리장 등을 둘러봤다. ‘무상급식’과는 무관한 일정이었다. 2박3일간 쓴 경비는 2377만원. 1인당 169만원 꼴이었다. 방문단에 낀 김 대표와 양천상공회장, 양천체육회 고문, 양천문화원장 등 민간인 4명의 경비는 구에서 부담했다. 양천구청 송희수 총무과장은 11일 “시민사회 대표성을 감안해 선별했고, 비용 지원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출장 목적과 관계없는 민간인의 해외체류 비용을 구비로 지원했다면 사전선거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기 1년도 안 된 민선 5기 서울 일부 구청장들이 목적이 불분명한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적으로는 ‘자매결연 도시 방문’ ‘해외시장 개척’을 내세우지만 실제론 세금으로 외유를 다녀온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본지가 서울 25개 구청에 구청장들의 해외출장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해 분석한 결과다. 선진 행정을 배우 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은 적극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세금으로 경비를 충당하면서 외유성으로 일관하는 게 문제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지난해 10월 6박8일 일정으로 터키를 다녀왔다. 자매도시에 생긴 ‘광진로’ 준공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김 구청장은 터키 일정을 마치고 이집트에 들러 스핑크스 등 유적지를 둘러봤다. 광진구 측은 “아차산 역사유적 개발에 참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광진구의회 모 의원은 “(당시 구청에선) 터키에서 서울로 오는 직항노선이 없어 이집트를 경유했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서울~터키 구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직항노선이 있다.

  사실상의 단체관광을 가려다 시민단체에 꼬리를 밟힌 경우도 있었다. 문충실 동작구청장은 지난해 10월 동작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아이치현 다하라시를 찾을 예정이었다. 구의회 관계자 4명도 동행키로 돼 있었다. 구청에선 구의원들에게 일정표를 돌렸다. 4박5일간 출장기간 중 공식일정은 단 한 건. 나머지는 메이지신궁, 하코네 국립공원 답사 등이었다. 이를 알게 된 지역 시민단체가 출발 이틀 전 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동작구는 "확정된 일정이 아니었다”(정진태 총무과장)며 ‘업무형’ 일정표를 다시 작성했다. 의정감시단 유호근 사무국장은 “이틀 만에 일정표를 다시 짰는데 오죽하겠냐”며 “현지에선 무얼 했는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자치단체장의 외유성 출장이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되풀이되는 건 내부 감시체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승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지방의회는 ‘국외여행심사위원회’를 통해 그나마 사전규제라도 하는데 반해 자치단체장은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사후 검증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자치단체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역할을 못해서다. 적잖은 구청장들이 출장길에 구의장 등 구의회 관계자들을 동반했다. ‘한 배’에 태워 입막음을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주대 정정목(행정학) 교수는 “서로 감시하라고 뽑아놓은 대리인들끼리 결탁한 꼴”이라며 “세금이 이들의 관광경비로 쓰이지 못하게 시민 감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양원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