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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연대 기자회견문 전문 -1

중앙일보

입력

공천 반대자 선정의 변
절대절명의 정치개혁과제에 대한 온 국민의 소망을 담아

우리 정치가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정당 차원의 위기나 정치권 내부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정치 전반의 총체적 위기입니다. 우리 정치는 국민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국민적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은 우리 정치권의 일상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치가 당면한 개혁과정에서 개혁을 촉진하고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으며 해방 이후 최대 국난인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소모적인 갈등과 정쟁으로 국민의 불신과 지탄을 자초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정치가 헌법에서 부여한 직무를 수행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정치와 더불어 우리가 수많은 도전과제가 기다리고 있는 불확실한 21세기를 해쳐나갈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여러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은 이러한 정치로는 사회발전은 물론 최소한의 정치개혁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낙천낙선운동을 선언한 이래 우리의 선언은 정치권은 물론, 전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여야 정치인의 상당수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시민단체의 본분을 벗어난 불법적 행위로 매도했고 심지어 특정 정치세력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유권자의 대다수는 폭발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유권자들의 호응은 우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고, 그 소문은 국제사회에까지 전해져 21세기 참여정치시대의 첫 장을 여는 조용한 유권자 혁명으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권의 강한 반발과 선관위의 위법판정은 곧 유권자들이 강력한 지지여론에 묻혀 버렸습니다. 이 운동의 어느 순간에선가 낡은 정치권과 성숙한 사회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음이 확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극적인 과정이야말로 낙천낙선운동의 역사적 시대적 정당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형성된 거대한 흐름은 이 격류를 얕잡아보고 낡은 사고에 젖어 선거법을 담합처리하려 했던 정치권은 물론, 이 운동을 시작한 우리 자신에게도 폭풍처럼 다가왔습니다.
낙선운동은 이제 2000년 총선의 당연한 전제로, 부패무능불성실 정치인에 대한 심판은 확고부동한 당위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 스스로가,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상 초유의 유권자 행동의 한 가운데서 부지불식간에 그 조타수 역할을 부여받게 된 우리의 부담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묻고 있습니다. 총선시민연대가 불을 지핀 이 거대한 운동이 한낱 한풀이에 그치지 않고 다가오는 새 천년의 첫 총선에서 과연 부패무능정치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유권자 심판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 열기가 새로운 시민참여정치의 터전을 만들고 국회를 진정한 국민의 심부름꾼들로 채우는 선거혁명으로까지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유권자 폭풍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천반대자 명단의 작성과정은 한마디로 전쟁 같은 불면의 밤의 연속이었습니다. 온 국민과 정치권이 지대한 관심 속에 기다리고 있는 공천반대자 명단작성에, 이 운동에 대한 우리 모두의 소망과 사명감, 그리고 책임감을 다해, 그리고 만약 있을지도 모를 잘못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신중함과 엄밀함, 공명정대함으로 이 명단을 작성했음을 감히 밝히는 바입니다.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 대상자 조사팀은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회도서관과 법원, 인터넷, 참여단체의 의정자료 DB를 샅샅이 뒤지고 참여단체들과 일반시민들의 제보자료를 축적했습니다. 과거 심사대상자들이 낸 서적과 논문, 이들에 대한 언론보도 내용 등을 검토하는가 하면 심지어 전과사실, 피의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당사자 본인은 물론 관련자에게 직접 확인하는 등 실사작업도 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총선시민연대는 선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국회의원 전원에게 소명자료 요청서를 보내 언론 등을 통해 문제가 된 사례에 대한 사전해명을 요구하였고, 우리가 수집한 자료들과 일일이 대조하였습니다.

나아가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청취했고 시민적 상식에 입각한 법률적 판단을 위해 자문변호사단의 소견을 물었습니다. 나아가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공천반대 사유와 기준을 조사하는 한편,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 가운데 선정된 유권자 100인 위원회를 통해 선정기준과 부적격 대상인사를 심의토록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의 작업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작업의 매 과정마다 거대한 장벽과 만나곤 했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국회는 한번도 유권자 앞에 투명하게 자신을 공개한 바 없는 성역이었으며, 국민 앞에 자신을 드러낼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음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소위원회 속기록이나 표결의 기록은 그 동안 시민단체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예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본회의 출결 상황은 1998년 12월 이후에나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법안발의 건수조차 완벽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어 일일이 복사본을 뒤져야 했습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부패와 무능이라는 정치권의 실체를 접한 자료조사팀은 각종 비리의혹과 이권담합, 감언이설과 이율배반으로 얽힌 여야국회의원들의 현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우리는 현역정치인의 70%를 교체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이 단순한 정서적 반발이 아닌 실체적 근거를 갖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치권에서의 '다선'과 '중진'은 곧 나태와 불법의 경력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부여한 면책특권과 국정감사권, 입법권을 남용하여 법을 조롱하고 법의 심판을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정해진 재판일자조차도 이유 없이 연기하거나 제멋대로 불출석하는 방약무인한 태도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더욱 손쉽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15대 국회의원중 과반수 이상의 정치인들이 공천반대자에 포함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현실 속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요 부패 관련 자료를 완벽하게 확보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발표하는 공천반대자 명단은 최소한의 명단입니다. 따라서 선정결과가 부분적으로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비판의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확실한 사법처리 결과나 명백한 실정법상의 근거에만 의존해서 실증주의적인 방식으로 공천반대자를 선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드러난 사실에만 의존하는 실증주의적 방식은 그동안 우리사회의 왜곡된 검찰권행사와 사법질서에 비추어 상당 부분 사실과 배치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일반의 정서와도 괴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소여부, 확정판결여부, 무죄여부를 떠나 단순히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것만으로 공천반대자로 선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공개된 부패사안과 사법처리 과정과 결과를 중심으로 하되 바람직한 정치행태와 정치문화의 관점에서 반대 여부를 엄밀하게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천반대자를 선정하였습니다.

사실 총선시민연대 내부에는 반복적으로 전개된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좀 더 많은 정치인들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의 선정방침이 함량미달의 다른 많은 정치인들에게 도리어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공천반대 인사 외에도 공천반대자 선정과정에서 우리가 고민했던 내용, 혐의사실과 본인의 해명사유, 그리고 우리의 판단내용을 별도의 문서로 작성하여 각 정당에 송부하고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적을 수용하여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각 정당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부적격자 외의 인사들에 대해서도 재검증해야 할 것입니다. 총선시민연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수의 공천반대 대상자 외의 정치인들이 모두 다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의 조사와 판단의 결과물을 정당과 유권자 앞에 내어 놓습니다. 물론 최종적 판단은 정당 공천심사기구와 유권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우선 각 정당은 이 결과를 공천과정에서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부패·무능·저질 정치인들이 다시는 유권자 앞에 설 수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총선시민연대는 우리의 공신력을 다해 이 명단을 발표한 만큼, 만약 이들이 또다시 공천이 되고 총선에 나선다면 우리의 모든 역량을 다해 국민과 함께 이들의 낙선을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명백히 합니다.

총선시민연대는 우리의 공익적 양심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 명단을 작성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의 작업은 특정인의 명예나 위신을 손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절망하고 있는 정치현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낡은 정치의 청산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힘 모아 이룩해야 할 절대절명의 개혁과제입니다. 오늘의 명단발표가 2000년 총선에서 거역할 수 없는 유권자 심판의 물결로 이어져 새로운 참여민주주의의 역사를 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0. 1. 24
2000년 총선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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