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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 태어나 성장 때 불황 쓴맛...그들은 반골이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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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반골 세대’로 떠오르고 있다. 취업전쟁을 치르고 있는 20대, 486세대로 특화되는 40대 사이에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30대가 최근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반항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72~81년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의 30대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활발히 소통하며 각종 선거 때마다 반정부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30대가 왜 반골 세대가 됐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직장 생활 8년차인 김지연(32·여)씨는 지난해 9월 결혼한 뒤 전세대란의 직격탄을 맞았다. 전셋값이 너무 올라 서울에선 아파트는커녕 다세대 주택도 구하기 힘들었다. 경기도에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그나마 몇 달 새 2000만원 넘게 뛰어 평수를 줄여가야만 했다. 김씨는 “아이를 낳긴 낳아야겠는데 하나는 몰라도 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주위를 돌아보니 육아비와 교육비 부담이 너무 큰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분당에 사는 김한성(38·남)씨는 이번 성남 분당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서울 강남의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투표하기 위해 평소보다 퇴근을 한 시간 앞당겼다. 선거 당일 고교·대학 친구들이 트위터를 통해 꼭 투표하라는 독려 메시지를 보내온 것도 그를 투표장으로 이끈 큰 원동력이 됐다. 그는 “세상은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은데 정작 우리 세대는 대출금 이자와 아이 학원비에 허덕이며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느낌”이라며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현실비판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0대와 40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지금의 30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경제적 혜택과 부모의 보호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어떤 전문가들은 ‘과보호 1세대’라고 부른다. 경제 호황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부모 세대가 갖고 있던 미래에 대한 낙관과 기대를 지켜보며 자랐다.하지만 97년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두 차례 경제쇼크를 겪으면서 냉엄한 현실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실직과 바늘구멍 취업 등으로 고통받았던 30대들은 경제적으로 겨우 자립하려는 순간, 글로벌 금융위기로 또 한 번의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엔 대출금 이자폭탄에 전셋값 폭등까지 겹쳤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경제 위기와 취업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30대가 커다란 좌절과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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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는 또한 ‘샌드위치 세대’다. 486으로 대표되는 40대는 나름의 철학과 문화를 공유하며 우리 사회의 조명을 받아왔다.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며 20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틈새에서 30대는 아직 직장에 제대로 뿌리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신용불량자가 가장 많고 경제 위기 후 고용률 회복이 가장 더딘 세대도 30대다. 일과 가정 모두를 챙겨야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골드 미스’로 표현되는 30대 미혼 직장여성의 모습에도 명암은 존재한다. 안미현(34·여·회사원)씨는 “직장에서의 성공은 물론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친구들이 적잖다”며 “주변에선 ‘화려한 싱글’이라며 부러워하지만 속으론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이직률은 높고 조직 충성도는 낮아
30대의 이런 성향은 각종 투표에서 반항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분당을 재·보선 때 사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 손학규 후보는 30대에서 83.9%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40대(58.5%)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도 30대의 투표율은 2008년 총선에 비해 16%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90년대 대학 시절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해온 30대가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30대의 반정부 성향은 트위터 등 SNS를 매개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를 가장 활발히 하는 세대다. 컴퓨터와 가상 네트워크를 벗 삼아 자란 30대는 SNS를 통해 횡적으로 연결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혈연·지연·학연으로 연결돼 있는 기성세대와 가장 크게 차이 나는 부분이다.잦은 이직과 낮은 조직 충성도는 30대의 또 다른 특징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직장과 사회를 생각하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점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충분한 돌봄 속에 별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3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인내심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30대가 반골 성향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NGO)인 굿네이버스 조사에 따르면 2009년에 기부를 가장 많이 한 연령대는 30대다.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각종 문화센터의 주 고객이 50대 이상 여성에서 30대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나눔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30대에 귀 기울여 갈등 수위 낮춰가야
머지않아 한 사회의 주도세력이 될 30대가 정치적 비관과 냉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국가적 불행이다. 30대가 반골 세대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신광영 교수가 다음과 같은 대안을 내놓는다. “젊은 층의 요구 사항이 정치적으로 일정 부분 반영되고 정책을 통해 구현돼 간다면 이런 갈등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그러면 30대의 반골 성향도 주춤해질 것이다. 하지만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30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계속 커지는 반면 이들의 삶이 향상될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정치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갈등 수위가 한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우리 사회가 30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30대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금의 20대가 10년 후엔 훨씬 더 반골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며 “30대에게 일방적으로 조직에 순응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그들의 창의성과 자유분방함을 최대한 살려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신행 연세대 명예교수는 “30대는 자라온 특성상 질책보다는 칭찬에 민감한 세대”라며 “그들의 기를 살려주며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모든 세대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신홍ㆍ이지상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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